중년 남성 율곡 이이의 애틋한 로맨스
중년 남성 율곡 이이의 애틋한 로맨스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1.14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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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세 율곡과 20대 중반 유지의 사랑

[북데일리] 어린 여성과의 애틋한 사랑. 중년 남성이라면 한번쯤 품어보는 판타지다. 조선시대 역시 다르지 않았나보다. 신간 <선비의 탄생>(다산초당. 2008)에 이율곡의 로맨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율곡이 48세 때다. 당시 그는 명나라 사신을 맞으러 황해도를 방문했다. 거기서 율곡은 황해도 황주 관아에 딸린 기생 유지(柳地)를 만났다. ‘율곡전서’에 따르면 유지는 선비의 딸인데, 가문이 몰락해 기녀가 됐다. 그녀를 두고 율곡은 이렇게 기록했다.

“날씬한 몸매에 곱게 단장하여 얼굴은 맑고 두뇌는 영리하므로, 내가 가련하게 여겼으나 처음부터 정욕의 뜻을 품은 것은 아니다.”

A급 외모에 똑똑한 머리. 요즘으로 치면 명문대를 나온 미모의 배우 김태희쯤 됐지 싶다. 둘은 꽤 친했다. 유지가 율곡을 따랐다. 역시 율곡전서의 한 구절이다.

“내가 해주에서 황주로 누님을 뵈러 갈 때에도 유지를 데리고 여러 날 술잔을 함께 들었고, 해주로 돌아올 때에 그녀는 조용한 절까지 나를 따라와 전송해 주었다.”

당시 유지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구봉 송익필>의 저자 이종호 교수는 16살이 채 못 됐을 것으로 추측한다. <선비의 탄생>을 쓴 김권섭은 율곡이 원접사로 해주에 방문했을 때 율곡은 48세, 유지는 20대 중반이었다고 말한다. 어찌됐건 나이차가 적지 않게 나는 사이였음은 분명하다.

당시 관습에 비추었을 때 중년의 남성이 20대의 기녀를 가까이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을 터. 하지만 율곡은 유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신체 접촉을 피했다. 도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다.

“율곡과 유지가 서로 몸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은 ‘도의’를 지키는 일이었다. 여느 기생들 같으면 남정네가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부끄럽게 여기거나 심지어 불쾌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지는 도리어 율곡의 도의에 감복하고 진심으로 따랐다.”

그러나 어디 사람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율곡은 시를 지어 유지를 향한 마음을 대신했다.

이쁘게도 태어났네 선녀로구나
10년을 서로 알아 익숙한 모습
돌 같은 사내기야 하겠냐마는
병들고 늙었기로 사절함일세

나뉘며 정든 이같이 설워하지만
서로만나 얼굴이나 친했을 따름
다시 나면 네 뜻대로 따라가련만
병든 이라 세상 정욕 찬채 같은 걸

길가에 버린 꽃 아깝고말고
‘운영이’처럼 ‘배항이’를 언제 만날꼬
둘이 같이 신선 될 수 없는 일이라
나뉘며 시나 써 주니 미안하구나

여기서 운영과 배항은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배항이 운영과의 결혼을 조건으로 백 일 동안 절구에 신선약을 찧어주고, 둘이 나중에 신선이 됐다는 고사다. 율곡은 옛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다.

이런 시가 하나 더 있다. 유지가 찾아온 밤에 율곡이 지었다는 시구다. 품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율곡의 안타까운 마음이 드러난다.

“문을 닫으면 인(仁)을 상할 것이요/ 동침을 한다면 의(義)를 해칠 것이다”

결국 율곡은 어떻게 했을까. 저자에 따르면 율곡은 문을 열고 유지를 맞아들임으로써 인을 실천했고, 유지와 몸을 가까이 하지 않음으로써 의를 지켰다. 현명한 선비의 풍모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보답하듯 유지는 율곡이 죽자, 3년상을 치른 후에 머리를 깎고 산 속에 들어가 남은 생을 보냈다고 한다. 종합하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러브 스토리라 할 만하다.

이처럼 책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선비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주목한다. 남명 조식, 송강 정철, 난설헌 허초희, 교산 허균,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을 인간관계를 통해 살펴본다. 정과 의를 아끼는 선비들의 모습이 사뭇 감동적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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