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칼럼] '조양호 동정론'으로 본 기업총수들의 수난
[WP칼럼] '조양호 동정론'으로 본 기업총수들의 수난
  • 장윤영 대표
  • 승인 2016.12.0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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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페이퍼 대표 장윤영

[화이트페이퍼 칼럼] 일국의 대통령이 한낱 얼굴마담으로 격하되고 저잣거리에 있어야 할 일반인 신분의 호가호위 무리가 국가시스템을 함부로 주물러 온 내용의 막장드라마는 도무지 끝이 안 보인다. 특검과 탄핵 돌입을 고비로 시즌2를 준비하는 모양새이지만 드라마 대본에 담길 불유쾌한 막장 이야기는 여전히 무궁무진한 듯 하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그 옛날 노래가사가 저마다의 입에서 한탄조로 흘러나온다.

그림자 권력의 저급한 갑질을 테마로 한 드라마이기에 억울하게 갑질을 당한 피해자들도 여럿 등장한다. 얼마 전엔 우리의 스포츠영웅이었던 박태환, 김연아도 피해자로 부각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대기업 총수들도 그 범주 안에 있다. 조폭성 권력이 팔을 비틀어 돈을 강제로 뜯어내다시피 한 것이 사안을 관통하는 핵심이자 본질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요즘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는 그들을 피해자가 아닌 공범 혹은 죄인으로 몰아간다. 주범은 엄연히 따로 있고, 설사 범죄에 연루되었다 한들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 측면이 강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돈을 뜯겼든 말든 돈을 준 것은 팩트이니 당연히 반대급부가 없었겠느냐는 데 초점이 맞춰진 듯 하다. 여기에 정치권은 정경유착의 또다른 사례라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다. 이러다가 막장드라마 중후반에 그들이 조연급 악역으로 등장하는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살아있는 권력이 집요하게 요구하는데 돈을 내지 않고 버틸 기업이 과연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합리적인 의문은 설 자리가 없다. 반기업,반시장 정서가 유난히 강한 한국사회의 서글픈 진풍경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우는 그 합리적 의문을 푸는 하나의 단서가 될 듯 하다. 그는 다른 기업총수들과는 대조적으로 피해자냐 공범이냐는 소모적인 갑론을박의 현장에서 한 발짝 비켜 서 있다. 권력이 시키는대로 하지않고 돈을 달라는대로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돈도 명예도 잃은 최대 피해자라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다른 기업총수들도 조 회장처럼 처신했으면 많은 것을 잃었을 수 있었으며, 그러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상징적 역설이기도 하다.

하기는 최순실이란 이름 석자도 제대로 모르고 있던 시절, 특히 올들어 조 회장과 한진그룹을 둘러싼 일련의 뉴스는 개인적으로도 퍽이나 의아했다. 막장드라마의 특징이 때로는 황당하기까지 한 비상식적, 비정상적인 극의 전개가 아니었던가.

올 봄에 그가 기업경영 전념을 이유로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직에서 돌연 물러났을 당시 그러려니 하면서도 일말의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던 이유는 불명예 퇴진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남다른 열정과 애착을 갖고 일을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그였다. 더욱이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올림픽을 제대로 준비하는데 시간이 모자른 판에 조직의 수장이 느닷없이 교체되는 것은 국제스포츠사회에서도 고개를 내저을 일종의 넌센스 같은 해프닝이었다.

8월 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상선보다 회생가능성이 있다는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진해운은 현대상선과는 달리 된서리를 맞았다. 최악의 물류대란이란 후폭풍은 예견된 참사였지만 금융당국은 지금도 금융논리에 따른 결정이라 강변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모든 책임이 한진에 있음을 강조했으니 정치적 판단도 가미된 듯 했다. 다분히 상궤를 벗어나는 일련의 흐름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금융당국의 산업에 대한 몰이해와 집권세력의 아마추어적 단견이 빚어낸 대형 정책실패 사례 쯤으로 여기려 했다.

막장드라마가 시작되면서 그 의아심은 일거에 풀렸다. 그런데 개운하기는커녕 소태를 씹는 듯한 느낌이다. 그간에 드러난 정황을 보면 최순실 무리는 평창올림픽을 '종합 이권 세트'로 여긴 듯 싶다. 자신들의 뜻대로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요 현안마다 마찰을 빚은 조 위원장이 눈엣 가시같은 존재로 여겨졌을 지 모를 일이다. 더욱이 한진그룹이 최순실의 미르재단에 낸 10억원은 기업순위가 낮은 기업보다도 턱없이 적었다. 괘씸죄 항목에 추가로 기재될 사항이었을까. 조 회장이 만약 자리에 연연해 비선 세력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협조했더라면, 그리고 그룹 형편에 비해 무리하게 돈을 냈더라면 호가호위 무리로부터 최소한 미운 털이 박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일각의 해석에 설득력이 더해지는 대목이다.

조 회장과 현 정부의 악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년 전 이 맘 때에 지금에 와서 보면 최순실게이트의 운명적 예고편이었던 십상시 문건 파동이 터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사안의 폭발력에 비해 비교적 빨리 대중의 뇌리 속에서 사라져갔다. 곧 이어 터진 또 다른 대형 뉴스가 이를 해일처럼 뒤엎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재벌가 딸이 저지른 그 사건은 그 자체로 만인의 공분과 지탄을 받을만 했다. 다만 십상시 문건파동으로 한창 코너에 몰렸던 청와대의 입장에서 때마침 반갑게 등장한 이 사건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했을 지, 아니면 불이 더 세게 타오르도록 은근히 부채질을 했을 지는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을 듯 하다. 후자의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기는 했다. 조현아 동생이 구치소에 간 언니에게 보낸 '반드시 복수할거야'란 문자내용이 이 사회의 집단분노를 일으켰는데 그런 지극히 사적인 핸드폰 메시지 내용이 어찌 일부 언론에 슬쩍 흘려질 수 있는 것인지 곱씹어 생각할 만도 했다. 조현아가 눈물을 흘리며 구치소로 향할 때 많은 이들이 통쾌한 기분을 느꼈지만 과연 조현아의 죄질이 구속감이었는 지는 지금도 논쟁이 한창이다. 결과적으로 십상시 문건 파동 당시 흘러나왔던 대한민국 권력 1순위는 최순실이란 생경하고 섬뜩하기까지 했던 주장은 유야무야 묻혀버렸다. 그 시절 그 말의 진위가 제대로 파헤쳐 졌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에 미치면 착잡한 기분마저 든다.

요즘 일각에선 조 회장에 대한 동정론이 일고있다고 한다. 일리는 있지만 그렇다 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 온전히 다시 담아 질 수 있을까.게다가 조 회장의 수난과 시련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미 한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곧 다른 기업총수들과 함께 국조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고 특검 조사도 받아야 한다. 이를 준비하는데 그룹 수뇌부가 비상이니 그룹 경영은 뒷전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조 회장은 최대 피해자라는 동정론 때문에 다른 기업총수들에 비해 홀가분한 입장일 지 모른다. 다른 기업총수들의 경우 흘러가는 기류로 보아 보다 가혹한 수난시대를 맞을 듯 하다. 그들도 광의의, 선의의 피해자라는 재계의 주장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 지기엔 우리 사회의 토양은 그들에게 지나치게 적대적이다. 이미 정치권의 마녀사냥은 시작된 느낌이다. 거대야당은 재벌이 사익을 위해 국정농단세력과 짬짜미를 한 것이라고 자체 규정을 했으니 내일 기업총수들을 불러 놓은 자리에서 경쟁하듯 면박주기, 망신주기의 주특기를 발휘할 듯 하다. 전국민을 상대로 생중계가 된다면 그들이 내지르는 호통과 질책의 톤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인민재판 식으로 진행될 그 풍경을 바라 볼 국제사회의 시선이 어디로 향할 지, 그것이 한국대표기업들과 나라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두지않는 분위기다.

정치권은 애써 무시하지만 최순실게이트發 정경유착은 과거의 정경유착 유형과는 사뭇 성질이 다르다. 애초에 사이비 권력의 비열한 갑질이 없었다면 판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텐데 그 엄연한 현실을 도외시한 채 과거의 잣대로 재벌을 '罪罰'로 몰아가려는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적 행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그룹처럼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는 모습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길이 로마가 아닌 최순실로 통하던 시절에 대체 어느 기업이 그 무리로부터 돈을 내라는 압력을 받고 감히 '노(No)'라고 뿌리칠 수 있을 것인지 한 번 쯤은 기업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헤아리는 정치권의 인식전환이 아쉬울 따름이다. 과거처럼 먼저 돈을 싸들고 권력을 찾아가 도와달라 로비한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특검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는 것이지 마녀사냥을 통해 지목되고 정서법에 따라 처벌 수위가 결정되어서는 안될 노릇이다.

망국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은 우리 시대의 숙제이지만 그 숙제를 푸는 전제는 영원한 '갑'인 권력 스스로가 먼저 끊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점일 게다. 그것이 최순실게이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찾아내야할 양질의 교훈이 아닐까. 그런 연후에 기업이 잘못한 게 있으면 그 때는 차라리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들에게 돌을 던져라. 권력을 잡으면 기업을 돈이 필요할 때 뒤로 손을 벌려도 되는 '곳간' 정도로 인식하는 고질적인,위선적인 행태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재계의 수난은 계속되고 제2, 제3의 조양호 회장이 되지않기 위한 기업총수들의 처신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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