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연의테마동화] 애틋하거나 혹은 통쾌하거나
[신주연의테마동화] 애틋하거나 혹은 통쾌하거나
  • 신주연 동화전문기자
  • 승인 2008.09.23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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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종이로 만든 발레리나 인형을 사랑한 장난감 병정이야기, 기억하시나요? 양철 숟가락을 녹여 만든 25개의 병정인형들. 그 중 하나는 양철의 양이 모자라 외다리 신세가 되었죠.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범하지 않은 운명을 타고난 외다리 병정. 그 뒷이야기를 이어보겠습니다.

안데르센의 원작을 더듬어보면 외다리 병정은 한쪽 발을 들고 있는 종이인형을 자신과 닮았다 여기며 사랑하게 됩니다. 헌데 그녀를 사랑한 또 다른 존재인 도깨비의 경고를 받게 되죠. 하지만 병정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결국 그녀를 사랑한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도깨비가 못된 장난을 걸어 창밖으로 병정을 날려버리거든요.

창밖으로 날아가 땅바닥에 거꾸로 처박힌 병정은 이때부터 손에 땀을 쥐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헌데 여기서부터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애틋하거나, 혹은 통쾌하거나.

동일한 주제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간 두 권의 책은 병정의 운명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매듭짓습니다. 고전에 충실한 <장난감 병정과 꼬마숙녀>(2006. 마루벌)의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여볼까요?

땅에 떨어져 있던 그는 꼬마아이들에게 발견됩니다. 아이들은 재미삼아 종이배를 접어 병정을 하천에 태워 보냅니다. 급한 물살만큼 아슬아슬한 병정의 운명. 하수구를 지키는 쥐에게 통행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기기도 하고 급류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종이배는 바스러지고 병정은 물에 빠지게 되죠.

헌데 운명의 장난일까요. 물에 빠진 병정은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고, 그 물고기는 다시 사람에게 잡혀 생선장수에게 팔려갑니다. 그 다음은 아시죠? 그 생선은 처음 병정이 있던 그 곳. 그 집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변덕스런 아이의 손길은 병정을 뜨거운 난로 속으로 던져버리거든요. 고통을 느끼며 녹아드는 병정은 뒤이어 더 큰 아픔을 맞이합니다. 그의 사랑, 종이로 만든 그녀가 그의 눈앞에서 바람처럼 날아들어 잿더미로 변해버리거든요. 그저 숟가락을 녹여 만들어 낸 병정과 팔랑거리는 종이인형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가슴 찡한 여운을 남깁니다.

사실 외다리 병정의 이야기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절절한 외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오페라가수인 제나 린드를 마음에 품었지만 신분의 차이를 넘지 못했죠. 사랑하지만 연인에게 다다를 수 없었던 안데르센. 그의 마음은 꼿꼿이 선채 종이인형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외다리 병정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헌데 이런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선택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외다리 병정의 모험>(2007. 비룡소)를 통해 유쾌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거든요. 헌데 시대적 배경과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다르답니다.

시궁쥐와 함께 집 구석에 살고 있던 외다리 병정은 낡은 집을 고치러 온 노동자에게 발견됩니다. 한 때 그 집으로 가서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곧 쓰레기봉투 속에 버려지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헌데 혼자가 아닙니다. 지저분한 바비인형과 함께 거든요.

쓰레기봉투는 하천 근처에 버려지고 그 속에서 병정을 발견한 아이들은 고전속의 아이들처럼 병정을 종이배에 태웁니다. 하지만 고전속의 그에 비하면 상황이 좀 나은 편입니다. 절대 물에 녹지 않는 바비 인형도 물에 떨어져 운명을 함께 하거든요.

이들은 흘러 흘러 어딘지 모를 원주민 꼬마의 손에 전해집니다. 헌데 이 꼬마녀석 솜씨가 제법입니다. 버려진 깡통을 재활용해서 근사한 자동차를 만들어 내거든요. 아이는 완성 된 깡통자동차에 병정과 바비인형을 나란히 태워줍니다. 그리고 관광지를 찾은 도시인에게 돈을 받고 팔아버리죠.

마지막 장면을 보니 이들의 인연은 해피엔딩입니다. 근사한 진열장에서 깡통자동차를 탄 채 폼내고 있으니까요.

이 새로운 병정이야기는 글자 없는 그림책으로 되어있습니다. 병정의 눈에 보여 진 시점으로 맞춰진 독특한 구도와 무거운 색감이 특징이죠. 가난한 노동자가 주워진 장난감을 재활용하는 장면이나 관광객에게 병정을 파는 장면에선 현대문명에 대한 냉소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그려낸 요르크 뮐러는 이래저래 안데르센과 인연이 각별합니다. 안데르센 상 수상자거든요.

그는 원래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이나 환경문제를 그림책에 부각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작품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외다리 병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저분한 도시의 모습이나 곳곳에 스며든 빈부차에 씁쓸한 기분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깡통차를 타고 있는 병정과 바비인형의 모습에선 한 바탕 폭소가 터지죠.

고전의 깊이를 맛보며 아픈 사랑을 느껴보거나, 색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쫓으며 한 번 크게 웃어보거나. 혹은 둘 자 맛보거나. 선택은 자유롭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은 택하실 건가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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