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조차 맑았던 `순수한 똥싼씨`
`똥`조차 맑았던 `순수한 똥싼씨`
  • 북데일리
  • 승인 2005.11.1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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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의 글이 처음을 돌아보게 하는 ‘반성’의 계기라면, 이윤학 시인의 글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만드는 ‘정화’의 기능을 한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등장하는 정신 나간 여자 여일(강혜정)이 육체의 ‘표현’을 통해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을 타인에게 전해주며 매력을 발산했다면, 이윤학의 소설 <졸망 제비꽃>(황금부엉이. 2005)에 등장하는 ‘똥싼씨’ 도 여일처럼 매력덩어리다.

이름도 특이한 똥싼씨.

정신이 나가 늘 엉덩이에 방석을 달고 다니는 이 여자는 매일 산에서 똥을 누기 때문에 ‘똥싼씨’라는 별명이 붙었다. 똥을 누는 모습을 목격해서였을까 아니면 똥싼씨를 인정하면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동네 아이들은 보따리를 메고 망가진 외모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똥싼씨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동심으로 가득 찬 소설은 소년과 소녀의 눈높이를 ‘이탈’하지 않고 소박하고 진심어린 감동을 전해준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똥싼씨가 메고 다니던 보따리가 아이들의 장난에 의해 흩어지는 장면이다. 똥싼씨의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결정적 반전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함구해야겠다.

친구 유란이는 똥싼씨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그래. 아주 가끔씩, 그것도 잠깐씩 웃곤 해. 그런데 아줌마는 언제나 웃음을 그치지 않지. 사람들은 욕심이 많기 때문일까.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웃음을 잃어버렸을까. 아줌마를 보면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아. 서울 살 때는 아빠가 하시는 일이 잘 풀려 가족이 행복했는데, 이제는 행복한 모습을 잃어 버렸어. 아줌마는 지난날이 불행했을 텐데도 그리고 앞으로도 불행할 텐데, 어째서 행복한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아”(본문 중)

똥싼씨의 더러운 발톱에 메니큐어를 칠해주고 손을 모래로 문질러 닦아주고 머리핀을 끌러 손톱에 낀 때를 파내주는 소녀는 엄마와 아빠가 환히 웃었던 때를 그리워한다. 모두에게 놀림 받는 버려진 인생이지만 똥싼씨는 소녀가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춘 부유(富裕)한 인물이다. 아이러닉한 세상구조를 바라보는 이윤학 시인의 감성이 졸망 제비꽃의 청초함을 닮았다.

(사진 =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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