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지식인 강상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 준 그림'
재일지식인 강상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 준 그림'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6.09.21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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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김현태기자]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그림이나 노래, 사진이 있을 터이다. 그런 사람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언제든 그것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대학 명예교수 강상중에게도 한 장의 그림이 있다. 바로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이다. 한 남자가 말없이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대체 왜, 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 남자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만든 것일까. 그 이야기가 <구원의 미술관>(사계절. 2016)에 담겨 있다.

책에 보면, 강상중은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봤다.

‘오른쪽 상단에 ’알브레히트 뒤러, 노리쿰(독일의 남쪽 지방) 사람, 불후의 색체로 스스로를 그리다, 28세‘라고 쓰여 있는 <자화상>은 화가로서의 강렬한 자기 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쪽

강상중은 그것을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가슴팍에 튀어나올 듯 그려진 가늘고 긴 예술가다운 섬세한 오른손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가진 얘술가로서의 자부심을 말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계속 된다. 이는 자신이 왜 <자화상>에 그렇게 심취했는지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털 달린 갈색 가운 같은 것을 몸에 두른 그가, 마치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름답게 물결치는 긴 곱슬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채 형언할 수 없이 투명한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자세히 보면 살짝 아래쪽으로 향한 오른쪽 눈에서는 슬픔에 젖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화가로서의 결연한 매니페스토임에 틀림없는 자화상이, 걱정스러운 얼굴에 자애로운 눈빛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강하게 끌렸습니다. 20쪽

여기서 하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

뒤러는 생전에 <자화상>을 세상에 내보이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죽은 뒤에 뉘른베르크 시청에 장식해 달라고 했다는 것. 말하자면 유언 같은 작품이다. 이와 관련 강상중은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그가 그림에 반한 이유다.

나와 엇비슷한 나이의 사람이 유언처럼 그린 자화상. 거기에는 그의 멋진 모습과 강렬한 자아, 슬픔과 기쁨 그리고 속세적인 것에서 성스러운 것까지 모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조숙하며 또 얼마나 인생의 심연까지 꿰뚫어 보는듯한 근심어린 시선인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결연히 선 긍지 같은 것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20쪽

눈은 마음 심연에서 나온 한 줄기 빛이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뒤러의 <자화상>은 일종의 거울이다. 누구나 그 그림에서 자신을 본다. 그림을 보며 자신을 깨달을 수 있다. 강상중 역시 그 빛을 통해 혼란스런 '그늘'에 잠겨있는 자신을 모습을 봤다. 결국 뒤러의 <자화상>이 주는 가치는 그 그림과 마주설 때 자신과 진정으로 마주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 뒤러의 <자화상>은 누군가의 자화상인 셈이다. 그 점이, 이 그림이 주는 놀라운 가치인 듯하다.

<구원의 미술관>은 저자가 일본 NHK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일요미술관'을 진행하며 만난 예술 작품을 소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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