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줄서서 수금하는 구조부터 바꿔야”
“출판, 줄서서 수금하는 구조부터 바꿔야”
  • 북데일리
  • 승인 2008.06.0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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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 한성출판기획 박영욱 대표

[북데일리]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이 아니었던 적이 있나? 출판의 위기도 독자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서이다. 하지만, 인간의 메모하는 습성이 있는 한 출판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출판 유통구조가 가장 문제다. 모든 업종이 전자결제를 하는데, 아직도 줄서서 수금하고 어음받는 게 말이 되나?”

한성출판기획의 박영욱(41) 대표의 말이다. 1998년 회사를 설립해 10년간 600여권의 책을 만들어낸 박 대표. 그는 처음 “술 한잔 사주면 될 일을 무슨 기획료를 받느냐”란 소리를 듣기도 했고, 한때는 직원 7명이 250건의 출판 계약을 진행하면서 감당을 못해 계약이 해지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기획’이란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이 일을 놓지 못하고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보람도 있기 때문이다.

출판 콘텐츠를 기반으로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문화기획사로 발전하고 싶다는 그의 속내를 합정동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아 들어봤다.

- 출판기획을 시작한지 올해가 10년째인데.

처음엔 망할 것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건물을 5년 전에 구입했다. 반응들이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번 줄 아는데 사실은 그렇진 않다. 기획사를 운영할 땐 인건비가 든다. 처음엔 기획서를 주고 돈을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봤지만, 지금은 인식이 되어 있다. 중급출판사 정도의 규모를 갖고 있다.

- 출판기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원론적으로 말하면, 기획사는 큰 돈은 벌 순 없지만 망하진 않다. 매출은 뻔하다. 지금은 출판환경이 어렵고 양극화되긴 했지만, 앞으론 점차 안정화 될 것으로 본다. 대형출판사들도 아웃소싱하는 곳이 늘고 있다. 지금은 기획이 단순이 원고 진행만을 뜻하지 않고 전체 책을 다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 교정교열까지 포함한 OEM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달에 20권 정도의 책을 만든다. 기획 한 책이 10권, 편집한 책이 10권 정도다.

- 국내 첫 출판 기획사로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군대에 있다가 나이 30 넘어서 사회에 나오니 갈 데가 없었다. 그때 종로에 종로서적이 있었는데, 길 건너편에 있는 구두점에서 구두굽을 갈고 있었다. 주인이 할아버지였는데, 난 뭘 해서 먹고 살까. 이 할아버지는 밥을 굶지 않을꺼 같은데, 나는 굶을 것 같더라. 그래서 생각한 게 “국문학을 전공했으니 잘하는 걸 해보자”. 그게 출판사였다. 전쟁이 나도 굶지 않고, 기술을 가지려면 한 분야를 파자. 책이라면 누구보다 잘할 것 같아서 출판사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았고, 결국 ‘출판기획’이란 사업을 시작했다.

- 어려웠던 때도 많았을 텐데

문전박대와 멸시. 특별히 외모가 뛰어난 것도 학벌이나 배경, 인맥 아무것도 없었다. 경력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엔 그런 악조건 때문에 참 힘들었다. A4용지 네 장 가지고 가서 돈을 달라고 하니까. 처음엔 50만원도 겨우 받았다. 당시의 기획이란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닌, 그냥 술 한잔 마시면 계산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벌이가 거의 안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한 때는 계약을 250건이나 했다. 직원 7명이 그걸 다 했다 했다. 그게 4년차, 5년차 쯤이었는데, 감당을 못해서 계약도 해지되고, 많이 어려웠다. 그 때 그 경험 때문에 요즘은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정도만 하게 됐다.

- 출판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유혹을 많이 받는다. 누군가는 “이해를 못하겠다. 그렇게 많은 기획을 하는데, 왜 본인이 안하나” 이런다. 마음만 먹으면 시스템이 다 갖춰졌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출판사를 하게 되면 기획사를 그만둬야 한다. 좋은 기획은 전부 우리 출판사에서 할 텐데, 그러면 다른 출판사에서 우리가 한 기획을 채택하겠나? 출판은 답이 없다. 시장을 예측할 수 없다. 출판의 유통구조가 주먹구구식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아직도 줄서서 수금하는 구조가 말이 되나?”

- 유통구조가 너무 난맥상이라고 할까 그런 것 같다.

지금은 전보다 훨씬 책을 잘 만든다. 해외 북페어 다 나가봤는데 프랑스보다 우리가 더 책을 잘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더딘 건 전부 유통구조 때문이다. 정말 문제가 많다. 이렇게 바쁜 데도, 한달에 4일은 지방에 간다. 한 달에 10일은 수금 다닌다. 온라인으로 보내주면 되는데, 이런 식의 수금이 말이 되나. 그 시간에 시장조사 하고 저자 발굴해야 한다. 줄서서 수금을 받아야 하는 유통구조가 정말 문제다. 어음부터 없애야 한다. 온라인 서점이 나타나 유통구조가 상당 부분 개선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앞으로 점점 유통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 지불 방식이 가장 큰 문제다.

- 반품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은데..

반품은, 광고도 그렇지만 15% 넘어가면 부채가 된다. 왜 반품이 많나? 마케팅 구조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은 점점 없어지고, 온라인 서점은 몇 개밖에 안 된다. 책을 알릴 데가 너무 협소한 것이 사실이다. 책을 많이 밀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 탓도 있다.

- 잊지 못할 저자가 있다면.

전문가 저자를 많이 발굴했다.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금융, 부동산 같은 실용서 시장이다. 그들로부터 실제적인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최악의 불경기 아니었던 적 있나?”

- 출판시장의 변화는 어떤가?

독자들의 수준이 점점 높아진다.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그러는 중에도 히트상품들이 많이 나온다. 독자는 여전히 살아 있고, 시장은 열려 있다. 출판만 어려운 게 아니다. 음반, 영화 다 어렵다. 주변 가게들을 봐라. 5년만 지나면 다 없어진다. 아니 5년도 아니다, 주기가 훨씬 빨라진다. 출판만 어려운 게 아니다. 긍정적으로 보는 게 중요하다. 독자들의 니즈에 맞는 수준 높은 상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독자들을 울릴 수 있는 상품을 치열하게 찾아봐야 한다.

- 그런데, 너무 경제경영서만 많이 만드는 것 아닌가?

그게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경제경영, 자기계발, 재테크 분야의 의뢰가 몰린다. 중간에 여행, 인문도 내긴 했는데, 사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기획사이기 때문에 의뢰 위주로 책을 제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 독자 입장에서는 너무 편향된다.

당연하다. 대학 다닐 땐 시와 소설의 세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실용과 성공만 쫓는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독자들의 니즈도 그쪽으로 몰린다고 생각하니, 경제경영 분야의 책이 출판된다. 이젠 거대 담론이 무너지고 ‘나’만 강조된다. 오래 살고, 가족들이 건강해야 하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야 하고, 이런 것만 관심사다. 그러다 보니 개인 경영, 성공 쪽으로 관심이 몰린다.

- 회사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

매출이 10-12억 정도로 크긴 않다다. 연간 종수는 250권. 기획에서 편집까지 다 한다. 고객사로는 순수문학 출판사를 빼고는 거의 다 거래해 봤다.

- 특별한 경영노하우랄까.

성실한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쉽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한다. 출판은 어음을 많이 돌리는데,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절대 어음은 받지 않는다.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 매주 기획회의를 통해서 저자 섭외도 하고 보드 작성하고 엄청나게 일이 많다. 매주 책을 만들어 기획료를 받지 않으면 회사를 운영할 수 없다. 안팔린 기획서가 200개가 넘는다. 그건 재개발 하고 있다.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이다.

“인간의 메모 행위 때문에라도 출판의 미래 밝다”

- 출판의 미래, 긍정적으로 보나

당연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을 갖지 못하면 할 수가 없다. 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인간의 ‘메모 행위’는 절대 기계가 따라 하지 못한다. 인간의 회귀본능, 텍스트를 향한 갈망 때문이라도 종이책, 출판의 미래는 밝다.

- 출판 기획자의 자질이랄까.

호기심이 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싫증을 참 잘 내는데, 반대로 말하면 또 그게 장점이 된다. 호기심이 강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외국어도 할 수 있으면 이점이 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저자로 보면 좋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전문분야의 책도 만들고 싶다. 예컨대 우리는 ‘칼’에 대한 책이 없다. 어떤 전문분야에 대한 책이 부족하다. 하나의 장르에만 편향되는 경향이 많다. 시장 구조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많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 같다.

[신기수 책전문기자 movie@popzen.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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