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이 책] 기억력 때문에 '망한' 기억력 천재
[추천! 이 책] 기억력 때문에 '망한' 기억력 천재
  • 김진수 기자
  • 승인 2016.08.17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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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킨 지음 |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6년

[화이트페이퍼=김진수기자] 우리의 뇌는 그 어떤 고성능 컴퓨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이 정밀한 뇌시스템에 결함이 생기면 기묘하고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한 남자는 심한 발작으로 뇌 일부(해마)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가 문제가 생겼다. 수술 이전의 10년간에 해당하는 기억 전체가 통째로 사라졌고, 새로운 기억도 생성할 수 없었다. 매일 만나는 사람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했고,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뇌과학자들>(해나무. 2016)은 이런 질병과 증상, 그리고 환자를 지켜본 뇌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엮어 뇌 영역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밝혀낸 책이다. 책에는 매우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그 중에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이야기가 흥미롭다.

모스크바에서 기자로 일하던 솔로몬 셰레솁스키는 한 번 외운 것을 오랫 동안 잊어버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기억력 천재였다. 그는 한 때 읽은 단테의 <신곡> 서두를 15년이 지난 뒤에 악센트까지 살려 정확하게 서두를 암송했다. 이런 식이다. ‘넬 메초 델 캄민 디 노스트라 비타...’ 참고로 그는 이탈리아를 몰랐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된 내용을 외운다는 점은 일반인이 볼 때 경이롭기 짝이 없다.

이 기억력 천재의 삶은 어땠을까.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는 음악가, 기자, 컨설턴트, 공연 배우 등의 일자리를 전전하며 낙오자 비슷한 삶을 살아갔다. 그에게 배우가 힘들어 하는, 대사를 외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의 직업 중 하나는 기억술사였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청중앞에서 숫자와 단어를 외워댔다.

그러나 바로 그 대단한 기억력이 인생의 발목을 잡았다. 과잉공감각 때문이었다. 그가 듣는 소리는 모두 즉각 빛과 색 그리고 맛과 촉각 경험을 불렀다. 공감각은 하나의 감각에서 다른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숫자에서 색을 느끼는 경우가 그렇다.

셰레솁스키가 책을 읽으면 공감각 이미지가 떠올라 텍스트를 밀어냈다. 대화도 엉뚱하게 흘렀다. 한 번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여성 점원에게 무슨 아이스크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과일 아이스크림’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셰레롑스키는 그녀의 입에서 석탄과 검은 재가 마구 쏟아져나오는 걸 봤다. (과학지식이 있는 이는 어떤 식품을 볼 때 성분이 함께 떠오른다.) 387쪽, 일부 수정

그는 머릿속에 너무 많은 지식이 들어 차 있어서 늘 멍하고 무력한 상태로 희뿌연 안개 속에서 살아갔다고 한다.

책은 기억력이 너무 좋아도 아무 기억이 없는 것만큼 살아가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라고 전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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