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한국소설]다시, 우리는 만나야 한다
[내사랑한국소설]다시, 우리는 만나야 한다
  • 북데일리
  • 승인 2008.05.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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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시대는 가위질을 해대고 사람은 다시 잇기를 계속해 왔다. 더러는 단단히 매듭을 지어 다시 이별하지 않는 인생도 있고, 그리움만 품고서 이번 생이 다하도록 견디는 인생도 있다. 김원일의 최신작 <오마니별> (강. 2008)은 그런 끊어짐과 매듭의 이야기들이다. 과연 우리소설이 아픔의 자리에서 구원을 어떻게 이끌어내는지 살펴볼, 아니 증명할 좋은 기회다.

1. 우주의 섭리도 바꾸는 염원 - <오마니별>

이중길씨는 한국전쟁 피난길에 어머니와 손위 누이를 잃었다. 비행기 폭격에 어머니가 먼저 숨을 거두고, 연이은 폭격에 자신은 귀가 멀고 누이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는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서 염소 치는 조씨의 집에서 아들처럼 살아왔는데, 다 늙어 누가 자기를 찾는 다는 소식을 듣는다.

전쟁 때 헤어진 남동생을 찾는 사람은 스위스에 있는 한국사람 이수옥씨였다. 중길씨는 혼란스런 전쟁길에서 정신이 멍해지고 귀가 어두워진 이유로, 어릴 때부터 동네사람들의 상상에 의해 정체성을 획득한 인생이었다. 그러니 누구를 만난들 옛 기억을 살려내어 자신이 누구인지를 되찾는 일은 불가능해보였다.

누이와 중길씨는 서로 상대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그 오랜 세월동안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누이는 평화의 상징국 스위스에서 생활하면서 평화운동을 하다 과로로 쓰러지고, 혼수상태일 때 동생의 생존한 모습을 본다. 그리고 한국행을 결심한다.

두 사람은 서울의 호텔에서 만난다. 중길씨가 자기이름 석자만 정확히 대면 금방 해결될 일인데, 시대는 끝까지 인간에게 비정하다. 오직 핏줄이 이어져 흘러야한다는 누이의 일념은, 중길씨의 잘못 매듭지어진 기억을 풀어내려 애쓴다.

전쟁의 충격이 모든 기억을 차단해 버렸어도 끝내 하나의 기억을 닫지 못했는데, 그것은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숨을 거둔 그날 밤, 누이는 폭격으로 허물어진 빈 집의 무너진 천장 사이로 별을 보며 동생에게 말했다. “중길아,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 두 개를 봐. 아바지별과 오마니별이야. 천지강산에 우리 둘만 남기고 아바지가 오마니 데빌구 하늘에 가서 별루 떴어. 저기, 저기 오마니별 보여?”

중길씨가 기억한 단 하나의 단어는 ‘오마니별’이었다. 과학은 뇌가 가진 기능을 믿고, 문학은 핏줄의 염원이 가진 힘을 믿는다. 어머니의 간절함은 하늘에 별도 띄운다. 인간의 사랑은 역사도 바꾸고 우주의 섭리도 바꾼다.

2. 이 목숨 다하도록 기다리리 - <용초도 동백꽃>

통영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 용초도에 김노인이 찾아온다. 민박집을 하는 아낙 민이네는 김노인에게 선착장앞 모텔로 갈 것을 추천하지만, 그는 한사코 동백나무숲 앞의 민박집에 머물기를 원한다. 노인은 한국전쟁 당시 여러 포로수용소 중의 한 곳이었던 용초도에서 근무했다. 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을 일으킨 이념의 농축액이 떨어진 곳이어서, 극좌 극우의 첨예한 대립이 연일 이어졌다.

북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포로의 가족들은 늘 수용소 철조망 곁에서 가족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중 한 여인 순임을 노인은 사랑하게 된다. 어느 날 벌어진 유혈사태로 다 죽어가는 순임의 오빠를 그 가족들에게 인계하는데, 파도가 심했던 그날 밤 떠나가는 거룻배에 대고 노인이 외친다. ‘기다릴 테니 오 년 후 삼월 첫 주 여기 동백꽃 아래서 만나자고. 그때 못 만나면 또 오년을 기다려 다시 용초도로 오겠다고‘

그런 후 김노인은 서로 살겠다고 상대를 죽이는 이념과 인간세계를 등지고, 고향에 내려가 나무를 키우며 살아간다. 첫 만남이 있을 그해에 순임은 오빠와 어머니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오지 못했고, 두 번째 만남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노총각 김노인 앞에 나타났다. 만약 김노인이 오지 않는다 해도 선혈처럼 붉은 용초도 동백꽃이나 보고 갈 작정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또 오 년 후를 기약한다. 이후 많은 세월이 흐르고 헛걸음을 쳤지만 김노인은 오 년의 약속일 마다 동백나무숲으로 찾아오고 있다. 듣고 있던 민박집주인 민이네는 생각한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누구 한 사람 미치게 그리워하고 사랑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번에도 순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살아있는 한, 나무 키우며 열심히 살다가 오 년 후 다시 오겠다며 뱃전에 오른다.

기다림은 본래 아픔을 품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람이란 기다림이 없으면 완전한 행복에 다다르지 못한다. 채워지지 않는 그 어떤 무엇이 우리를 미치도록 행복하게 하는가. 전쟁은 우리 행복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렸지만, 사람들은 기다림이란 뿌리를 다시 심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랜 세월을 견뎠고 많은 순간 행복했다.

어디 총칼 든 전쟁의 자국뿐이겠는가. 먹고사는 전쟁의 폭격으로 인해, 엇갈린 운명의 사랑으로 인해, 또 다른 숱한 이유로 사람들은 저마다 생이별이 낳은 그리움을 한 움큼씩 가슴에 품고 산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닌데도 사람은 늘 뭘 기다리는 재미로 산다는 말도 있잖아여.” 김노인의 말이 맞다. 기다림은 자신의 운명을 바꾼 매몰찬 시대와 화해할 힘을 우리에게 준다.

예전에 그의 작품 <아우라지 가는 길>의 감동을 따라 정선 아우라지로 찾아 간 적이 있다. 거기엔 두 갈래의 물이 하나로 만나 흐르고 있다. 그리움의 물줄기들은 하나로 합쳐져서 원 없이 행복하게 흐른다. 갈라진 민족도, 우리들 마음속에 안개처럼 깔린 그리움 저편의 사람도, 모두 만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칼럼니스트 제클린 icjack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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