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사랑에 빠진` 50일간의 일기
`새와 사랑에 빠진` 50일간의 일기
  • 북데일리
  • 승인 2008.05.0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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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제목에 새 대신 큰오색딱따구리라는 말을 넣어야 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일곱 자나 잡아먹는 긴 이름 때문에 담을 재간이 없었다. 큰오색딱따구리(웅진지식하우스, 2008)와 저자(김성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큰오색딱따구리는 몸길이 약 25~28cm이며, 흰색과 검은 얼룩이 졌다. 수컷은 정수리 전체가 진홍색이고 암컷은 검다. 아래꽁지덮깃은 모두 분홍색이다.

50일. 살면서 우리는 이 기간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달력 몇 번 보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게 한 달 스무날이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를 펴낸 김성호 교수는 그 50일을, 아마 삶에서 극히 소중한 기록에 헌신했다. 한 쌍의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내 둥지를 틀고, 교접을 하며, 아이를 낳아 기르는 조류일지를 쓴 것이다.

한편의 드라마처럼 애틋하고 아름다웠다. 관찰자의 땀과 애정이 컷마다 깃들어 있었다. 안도현 시인은 추천의 글을 통해 "큰오색딱따구리에 미쳐버린 남편과 아버지를 좋아할 식구가 어디 있겠는가"라는 말로 저자의 수고를 대신했다.

"누군가에 몰입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은 뜨겁게 사랑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큰오색딱따구리에 몰두하면서 김성호 교수는 사랑이 무엇인지 체득하게 됐고, 그 누구의 간섭도 없는 성찰의 시간을 오롯이 갖게 됐다. 이 책이 단순한 관찰의 기록을 넘어 따스한 인간의 냄새가 나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상상해보라. 그 먼 숲 속의, 그 `흔한` 새들의 일상을 기록 하기위해 아무도 봐주지 않는, 무료하고 지루한 염탐을 두 달 가까이 하고 있었을 한 남자의 기이한 일탈을. 그러나 덕분에 우리는 오색딱따구리란 새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삶을 통해 새삼 우리를 되돌아보게 됐으니 너무 보람된 일이 돼버렸다. 2만5천원이란 책값은 그 가치에 비하면 턱없이 싸다.

책은 특히 마지막 부분이 진한 감동을 준다. 안도현 시인 역시 마음이 아렸을 그 대목은 애지중지 키운 두 마리 새끼를 떠나보내는 큰오색딱따구리 부부의 헛헛한 심정이었다.

`새끼가 떠나고 없는 둥지를 아빠는 먹이를 물고 찾아온다. 그러나 부리에 물고 있는 먹이를 물려줄 새끼는 떠나고 없다. 아빠 새의 그 허전함을 충분히 이해하는 관찰자는 메는 가슴을 어찌하지 못해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후, 그 새들과 둥지는 어떻게 됐을까. 필자가 스캔한 사진들 중 마지막에 답이 있다. 오붓했던 그 둥지엔 새 손님인 말벌 가족이 이사를 왔다. 뻥 뚫린 둥지는 마치 밀가루 반죽을 붙여 놓은 듯 변모했다. 비록 외양은 다르지만 세상사는 법은 큰오색딱따구리와 말벌과 뭐가 다를 게 있으랴. 아마 뜨겁게 사랑했던 새들과 이별로 뻥뚤렸던 저자의 가슴은 말벌로 인해 새살 돋듯 훈훈해졌을 듯싶다.

50일 간의 육아일기는 일개 네 마리 새의 일상사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웅장하고 경이로운 대 자연의 서사였다. (사진 큰오색딱따구리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 [임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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