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팅 뉴스] '목발의 여교수'와 택시기사의 약속
[화이팅 뉴스] '목발의 여교수'와 택시기사의 약속
  • 이수진 기자
  • 승인 2016.07.2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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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이수진 기자] ‘언제 밥 한 번 먹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고 가장 많이 안 지키는 약속이다.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의 약속을 하는 걸까. 얼마나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을까. 고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가 겪은 일화 하나는 약속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겨울 어느 날.

장영희 교수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추워서 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한참을 기다리자 택시 한 대가 와서 섰다. 젊은 택시 기사는 장영희의 목발을 보면서 말했다. (장 교수는 몸이 불편했다.)

“이 손님들 모셔다 드리고 올테니 2~3분만 기다리세요.”

택시가 골목으로 사라졌다. 장영희 교수는 곧 택시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았다.

잠시 후, 빈택시가 한 대 나타났다. 하지만 장영희는 그 택시를 타지 않고 좀 전에 약속한 택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15분이 넘어도 약속했던 택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장 교수는 ‘그 기사가 내가 목발 짚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골탕을 좀 먹이고 싶었거나 재미로 거짓말을 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자신이 누군가의 놀림의 대상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는 자괴감에 빠져 약속을 취소하고 다시 집으로 가려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였다. 택시가 한 대 왔다. 앞의 젊은 기사였다. 그는 택시에서 내리더니 '미안하다'며 어깨에 맨 가방을 들어주었다.

청년이 늦은 데엔 사연이 있었다. 차바퀴가 얼음 구덩이에 빠져, 근처 가게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다 붓고 나서야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 기사는 택시에 다른 손님들 태울 수 있었으나 약속 때문에 빈차로 왔다. 장 교수가 약속을 져버리고 먼저 온 빈 택시를 탔다면, 청년기사가 다른 손님을 태웠다면 서로 큰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약속은 믿음이다. 신뢰의 시험대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신뢰라는 유리 잔에 금이 간다. 그 작은 금은 점점 커져서 불신 사회를 만든다. 작은 약속일수록 더 잘 지켜야 하는 이유다.

이 이야기는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에 나온다. 

[화이팅(whiting)뉴스는 우리 마음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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