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의 진한 그리움
`잃어버린 것`들의 진한 그리움
  • 북데일리
  • 승인 2008.05.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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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주변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은 마치 `내 머리 속의 지우개`처럼 우리 뇌 한 모퉁이를 끊임없이 마모시킨다.

그 중에는 너무 까마득히 잊혀져 복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물과 사람들이 단숨에 기억의 창고를 박차고 나올 때가 있다. 새 책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다할미디어,2008)을 읽는 순간 그랬다.

마치 컴퓨터 자판의 `Ctrl+V` 기능처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신기하게 옛 기억을 그대로 `붙임` 해준다.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그러나 너무 잡고 싶은 그리움과 함께.

책엔 고무신, 벤또, 재봉틀과 같은 추억 속의 물품들이 즐비하다. `염색-고대`라고 쓰인 이발관과 `DP&E`란 사진관 간판 제목은 중, 장년 층 독자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한다. 시골 구멍가게인 `길성상회`와 번듯한 도회지에 섰던 `중앙극장`은 우리 기억 속의 낡은 먼지를 털어낸다.

이 책은 단지 옛 사물만 소개하고 있지 않으며, 그 속에 담긴 사람의 향기까지 전해준다. 예컨대 괘종시계에선 `박제가 된 할아버지의 시간`을 이야기 하며, 풍금 편에선 음악에 유달리 서툰 선생님 사연을 전한다.

`주인의 죽음 후 시간은 박제가 되어 시계대신 걸렸고 `국민학교` 마다 있던 풍금이 사라지면서 선생님은 속절없이 늙어갔다.`

저자는 오래되고 낡은 `생활속 유물`에 대해 깊은 감성과 성찰은 보여준다. 아이 눈 높이에 맞춘 시골 돌담에 대한 해석이 그 중 하나다.

`담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서 골목에서 아이들의 힘찬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는 대목은 무릎을 치게 한다. 요즘 농촌 마을에 가보라. 어릴적 보았던 낮은 돌담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어른도 넘볼 수 없게 쌓은 높은 담이 우뚝 서 있다.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답답함. 그 벽은 이웃과의 정을 단절시켜버린다.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서울신문 기자 출신의 저자 이호준은 "고향에 갈 때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이 하나씩 늘어나는 걸 보며 아픔을 느꼈다"며 "오래 전부터 이 땅 위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짐 같은 걸 지고 살았다"고 밝혔다.

보는 것과 기록하는 것은 다르다. 발로 이름 모를 곳을 누비며, 묵은 자료를 뒤척이었을 저자의 노고가 책 갈피마다 스며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저자가 홀로 느낀, 달콤하고 행복한 `느림의 미학`을 함께 나누게 됐다. [임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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