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돈으로 살 수 없는 고추장... 파지 줍는 할머니와 세탁소 아저씨 이야기
[삶의 향기] 돈으로 살 수 없는 고추장... 파지 줍는 할머니와 세탁소 아저씨 이야기
  • 이수진 기자
  • 승인 2016.07.20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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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이수진 기자] 도시에서 한 동네 사는 사람끼리도 인사 나누기도 쉽지 않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걸까. 가끔은 이웃집 숟가락 숫자도 알고 지내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아파트 상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저씨는 요즘 한숨이 깊다. 장기불황에 옷을 세탁소에 맡기는 사람이 줄어 일감이 줄었다. 더구나 여름철은 세탁소가 비수기이기 때문이다. 겨우 먹고 살기도 빠듯할 정도다.

세탁소 아저씨는 상가 앞에서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볼 때면 늘 마음이 쓰였다. 할머니를 볼 때면 시골에서 혼자 농사 지으시는 어머님이 떠올랐다. 하지만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가끔씩 얼음물 한 잔 드리는 정도였다.

어느 날이었다. 집 현관에 아이들이 보지 않는 헌책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내는 중고서점에 갖다 주고 몇 푼이라도 받아서 반찬값에 보탤 계획이었다. 다음 날, 세탁소 아저씨는 아내 몰래 그 책을 몽땅 세탁소로 가져 왔다. 그리고 할머니의 리어커에 묵직한 책더미를 실어드렸다.

며칠 후였다. 할머니가 유리병에 담긴 고추장 2병을 건네 주셨다. 할머니가 직접 담근 고추장이었다. 이 정도의 고추장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파지를 팔아야 할까. 세탁소 아저씨는 코끝이 시큰했다. 손가락으로 푹 찍어 맛을 보니 칼칼하고 달달한 시골 고추장 맛이었다. 세탁소 아저씨는 비록 아내의 반찬값은 날아갔지만 할머니의 고추장을 먹어본 것만으로 행복했다.

도시에서는 인정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콘크리트를 뚫고 나와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세탁소 아저씨 같은 분들의 숨어있는 정(情)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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