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한국소설]사소한 일에 울고 웃고
[내사랑한국소설]사소한 일에 울고 웃고
  • 북데일리
  • 승인 2008.04.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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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바람이 불어오면 귀기울여봐 작은 일에 행복하고 괴로워하며 고독한 순간들을 그렇게들 살다갔느니” 노랫말처럼 우리는 정말 작은 일에 울고 웃으며 한 평생 산다. 행복은 그다지 크고 거창한 요소들로 구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란 의미다.

김도언의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민음사. 2008) 는 상상력으로 세계를 재구성해가는 대신, 현실에 좀 더 가깝게 렌즈를 갖다 대어 읽는 누구라도 이야기 속 인물로 쉽게 편입되는 즐거움을 준다. 이야기의 전개는 리드미컬 하며, 인물들은 유기적으로 얽혀 읽기에 수월하다.

1. 멜랑콜리의 과거 - 원죄의 태동

소도시 변두리학원 강사 선재는 시를 써서 아버지의 원죄와 어머니의 천형으로부터의 초월하기를 염원했다. 스님이었던 아버지는 절집의 밥을 짓는 여자를 사랑하여 파계 후 선재와 동생 선규를 낳아 열심히 살았다.

선재가 성인이 될 무렵, 어머니는 한센병을 앓고 소록도로 보내진다. 그 때부터 선재의 남은 가족들은 아버지의 원죄로 인해 어머니가 천형을 받은 것이라 믿고, 각자 한구석이 무너져 내린 삶을 살아간다. 선재의 염원은 문학이 그리고 문학에 힘을 실어준 사랑이 선재를 배신하면서 소멸되었고, 이후 그의 삶은 ‘늘 순간순간을 견디는 것‘이 되었다.

선재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 소라는 군대간 남편을 두고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의 병 수발을 하며 살고 있다. 직업도 불안정하고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조금 부족한 남자였지만, 몸속에 생명이 들어서면서 결혼을 결심한다. 당분간 혼자서 아기를 키워야하고 아버지 도 돌봐야하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뱃속의 생명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기는 유산되고, 여전히 답답한 옛 생활로 돌아오고 만다.

2. 멜랑콜리의 현재 - 세계의 순환 과 개인들의 탈출

주인공 선재와 소라같이 모든 인물들은 자신들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멜랑콜리를 견디며 살고 있다. 학원장 철중은 욕망의 충족과 불충족의 사이에서 하루의 행복을 평가하고, 영어 강사 미진은 새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엄마에 대한 증오를 일탈의 생활로 잊으려 한다.

소라의 남동생 호준은 증오하는 아버지의 연금으로 가족이 연명한다는 사실이 화가 나서 양아치로 떠돌고, 미진의 대학선배이면서 역시 영어 과목을 담당하는 희태는 학원의 어떤 일에도 참견하지 않고 임용고시를 준비해왔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삶이 이런 모습으로 굴러가는 것을 참기 어렵다. 세계는 이전의 관성대로 순환하려하고 그 안의 존재들은 순환에서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들에게 “어제는 오늘이고, 오늘은 내일이고, 내일은 또 어제와 같은 시간일 뿐이다.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그래서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삶의 비애”로 가득 차있는 삶이다.

소라가 풀고 있는 낱말퍼즐의 답 ‘난공불락’은 주인공들에게 갑작스레 일어난 무슨 큰 사건들이 아니다. 오히려 사소하고 늘 있어왔던, 그러면서 목숨처럼 질긴 삶의 모습들이다. 큰 일이면 미리 마음을 다잡고 같이 강하게 부딪힐 것이지만, 사소한 일들은 발자국 소리도 없이 다가와서 우리 삶을 옥죄이는 것이다.

3. 멜랑콜리의 미래 - 원을 그리며 나아가는 생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원죄의 고리 속으로 선재는 자기도 모르게 들어간다. 부모의 모습을 보며 지옥이라 믿어왔고 그래서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원죄의 고리, 사랑 속으로 선재는 들어선다. 주인집 여자 소라도 선재가 좋아졌다.

소라의 반지는 동생 호준의 손에 들어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소라의 집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리고는 선재와 소라가 사랑을 감정을 확인할 때 삶의 윤회처럼 방바닥을 회전한다.

생각해보면 삶은 직선이 아니다. 삶의 나아감은 마치 제자리 원을 그리는 듯한 모양으로 조금씩 그 원자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원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이동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반복이 지겹고 우울하다. 원안의 사람은 절망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는 다른 삶의 나아감이 보인다. 이때 절망 없이 원을 그리며 나아갈 방법은, 서로에게 상대가 나아가는 모습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당신은 이만큼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주면 된다. 그리고 그들은 혼자 우울의 공간에 침잠해있을 때 들었던 어떤 구원의 목소리를 서로에게 들려줄 수도 있다.

소설의 끝에서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되고 때맞추어 소라의 아버지가 울리는 장난감 나팔소리와 남편이 있는 군대에서 걸려올 법한 전화벨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하나의 삶 속에 동시에 교차로를 건너는 희망과 절망의 부딪힘이 이 작품에 들어있다.

작가는 말한다. 전혀 세련되지 않은 모습이라 할지라도 “이들 모두의 생이 관찰되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단 한 순간이라도 연민 없이 사람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멜랑콜리를 표방하고 있어도 이 소설은 낭만과 재미가 풍성하다.

어느 날 사소한 것에 절망하는 우리는, 또 다른 어느 날 사소한 것에 희망할 수도 있다. 우리 행복지수는 사소한 삶을 닮아 금방 높아질 수 있다. 그러니 사소한 우리들은 계속 사소해지기를. 기꺼이 삶의 자잘한 모습들을, 삶의 천국과 지옥을 사랑하기를.

[칼럼니스트 제클린 icjack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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