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 뒷담화]① 냉정과 열정사이, 이장선 차장_<소담출판사>
[BS 뒷담화]① 냉정과 열정사이, 이장선 차장_<소담출판사>
  • 북데일리
  • 승인 2005.11.0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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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가 창간 첫 기획취재시리즈 를 연재합니다. 베스트셀러 출간에 얽힌 흥미로운 뒷담화 뿐 아니라 작가와의 에피소드, 담당 기획자, 출판기획과 마케팅 성공 스토리 등을 소개합니다. 독자들에게는 책읽는 즐거움 뿐 아니라 한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얽힌 흥미진진한 탄생 비화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출판계에 종사하는 `책마을 사람들`에게는 베스트셀러 기획 노하우와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공유할 수 있는 정보마당이 펼쳐집니다. / 편집자 註

[BS 뒷담화]①냉정과 열정사이 (소담)

이변이다. 책의 생명선이 짧기로 유명한 한국 출판시장에서 일본소설 <냉정과 열정사이>가 지난 6년간 80만권이 팔려나가면서 스테디셀러의 입지를 다졌다.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2000년 작품 ‘냉정과 열정사이’로 처음 한국에 ‘착륙’했다. `UFO(미확인비행물체)`였던 에쿠니 가오리를 아는 사람은 당시 국내에는 ‘거의’ 없었다. 이 일본 여성작가는 `반짝 인기`로 그칠 줄 알았던 예상을 깨고 출판동네에 거센 바람을 몰고왔다.

6년의 세월에도 잦아들 줄 모르는 에쿠니 가오리 문학만이 가진 괴력(?)은 국내 판권을 독점소유한 소담출판사의 기획-마케팅 전략과 맞물려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최근 소담이 펴낸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도쿄타워’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이제 명실상부한 일본문학의 대표적인 출판사로 자리매김했다.

‘아방궁’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정경 깊숙히 자리잡은 소담출판사 사옥에서 5년째 기획을 맡아 진행해 온 이장선 차장(33)을 만났다.

기자) 소담출판사는 한국에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를 처음 소개했습니다.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장선) 에쿠니 가오리를 소개한 첫 번째 작품은 <냉정과 열정사이>였습니다. 2000년 당시 소담출판사는 ‘광수생각’으로 유명했습니다. 지금처럼 일본문학출판사로 보일만한 작품을 소개한 적이 별로 없었죠. 그러다 한 일본인 에이전트가 굉장히 재미있게 본 소설이라며 ‘냉정과 열정사이’를 추천해 줬습니다. 추천을 받고 사장님이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서 작가를 만나 작품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소담은 에쿠니 가오리와 출판 독점계약을 맺었습니다.

기자) 2000년이라면 일본소설이 지금 한국시장에서처럼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때가 아닙니다. 단 한 작품만으로 에쿠니 가오리의 전 작품 독점계약을 결심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큰 도전이었을 텐데요.

이장선) 그건 제 아이디어라고 해도 좋습니다.(웃음) 출판인으로서 혹은 출판사로서 가장 허무한 때라면,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심혈을 기울여 키워온 작가의 다른 작품이 조금은 기대이하인 출판사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올 때입니다. 처음 국내에 소개된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냉정과 열정사이>지만 사실 훨씬 전에 쓰인 작품이 바로 <반짝반짝 빛나는>입니다.

국내에는 2002년에 소개됐지만 실제로는 1992년에 쓰인 작품입니다. 당시 국내 사회문화가 <반짝반짝 빛나는>에 들어있는 동성애나 조금은 특이한 결혼생활 같은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기상조일 것이라는 판단 하에 <냉정과 열정사이>를 먼저 소개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그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에쿠니 가오리에게 국내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지 못한 어떤 `새로운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런 가능성을 가진 작가라면 독점으로 계약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매우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냉정과 열정사이>를 처음 소개했을 당시 국내시장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장선)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냉정과 열정사이>의 출간 당시 반응은 사실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워낙 각 매체에서 이 작품에 대한 소개가 많았기 때문에 기획과 마케팅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김하늘, 손예진, 린, 보아, 한혜진, 신민아 등 많은 연예계 스타들이 읽고 유명 인사들이 좋아하는 책이라는 소개글로 언론 지면에 많이 소개됐기 때문에 판매부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요. 출판사가 거의 하지 않는 라디오 광고 반응도 매우 좋아서 비교적 큰 성공을 바랐지만 처음에는 생각만큼 판매부수가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소재로 남성작가와 여성작가가 나누어 사랑이야기를 썼고 이 작품에 대한 번역을 부부번역가인 김난주-양억관씨가 했다는 사실은 마케팅 소재로 좋은 결과를 얻어 냈습니다. 2003년에 동명 영화가 개봉한 것도 다시 소설의 인기에 불을 붙여준 요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기자) 그렇다면, <냉정과 열정사이>의 성공은 입소문을 통한 장기적인 마케팅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역시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과연 <냉정과 열정사이>가 이토록 오랜 기간 한국시장에서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요.

이장선) <냉정과 열정사이>는 여자편인 에쿠니 가오리의 `로쏘(Rosso)`와 남자편인 츠지 히토나리의 `블루(Blu)`가 6대4정도의 비율로 판매됐습니다. 사실, 실용서나 인문서가 스테디셀러가 되는 경우는 많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는 시장에서 그 생명선이 매우 짧습니다. 발간 즉시 주목 받지 못하면 금세 시장에서 잊혀지는 것이 소설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냉정과 열정사이>의 장수비결은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문학적인 매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냉정과 열정사이>의 내용은 순애보적이고 신파적이죠. 그러나 이국적인 공간이 주는 판타지와 매력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아닌 피렌체라는 공간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지요. 게다가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나 영화 소설과 비교해 에쿠니 가오리 문학은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갖가지 소품들을 비롯 작가의 풍부한 감성과 깨질 것 같은 예민한 문체는 독자들을 사로잡지요. 목욕, 독서, 와인, 산책, 하다못해 스카프 디자인까지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품들은 비주얼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에쿠니 가오리 문학의 여성들은 사랑과 연애 앞에서 매우 관조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매우 적극적이며 능동적입니다. 여느 소설에서 보지 못한 캐릭터들입니다. 이런 이미지는 에쿠니 가오리의 여성캐릭터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이미지죠. 지금까지 에쿠니 가오리가 창조한 개성넘치는 캐릭터와 그의 문학이 갖는 독특한 매력을 한국의 독자들이 사랑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자) <냉정과 열정사이>는 여성작가와 남성작가가 각각의 화자가 되어 철저히 자신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추억과 시간을 담아 냈습니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시간의 흐름과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치중합니다. 이 작품을 소개 했을 때 관련된 이야기와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장선) 남성작가와 여성작가가 한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따로 썼다는 점이 많은 주목을 끌었습니다. 한번은 국방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 책을 정서함양과 교육순화용으로 군인들에게 읽히고 싶다는 뜻을 밝혀 온 적도 있었습니다.(웃음)

웃지 못할 홍보마케팅 일화도 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씨와 츠지 히토나리는 부부가 아닌 친구이자 동료 사이인데 지금도 간혹 두 작가를 부부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한 일간지 기자가 실수로 ‘부부작가가 쓴 소설을 부부번역가가 번역하다’라고 보도하는 해프닝도 벌어져 진땀을 흘린 일도 있습니다. 번역자인 김난주-양억관씨는 부부지만 에쿠니 가오리씨와 츠지 히토나리는 친구입니다.

기자) 두 작가와 그 관계가 궁금합니다. 대단히 미인으로 나온 단 한 장의 사진이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정보의 전부입니다.

이장선) 두 작가는 모두 다작가이며 글쓰기에 무척 열정적입니다. 특히 츠지 히토나리는 연재까지 포함해 한달에 7편의 작품을 쓴다고 합니다. 에쿠니 가오리는 소설 뿐 아니라 에세이, 시까지 쓰며 번역 작업도 왕성합니다. 도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한국에 소개된 작품이 전부가 아니구요. 또 츠지는 굉장한 재주꾼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유명한 뮤지션이기도 하죠.

일본에서 앨범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습니다. 재능과 끼가 넘치는 작가지요. 이와달리 에쿠니 가오리에 대해서는 저도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아오이 역할로 캐스팅된 홍콩 여배우 진혜림을 별로 탐탁치 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밖에는...(생각하다) 특별히 없는 것 같습니다. (웃으며) 아는 게 있다고 해도 비밀로 해두죠.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시는 독자들에게도 베일에 싸인 작가로 남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기자) 에쿠니 가오리 작품을 소개하는 소담만의 특별한 기획, 마케팅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전작을 모두 소개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어떤 하나의 원칙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장선) (망설이다가)이런 것은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이 실제로는 <냉정과 열정사이>보다 훨씬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국내 독서계가 소화해낼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므로 출간시기의 앞뒤를 바꾼 것이죠. 이런 식으로 독서시장의 흐름과 분위기를 정확히 읽어낸 후 독자들이 책과 작가를 받아들일 만한 여건이 조성되면 작품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소담을 통해 에쿠니 가오리가 처음 국내에 소개되고 그를 좋아하는 독자층이 자생적으로 생겨왔다고 봅니다. 이제는 에쿠니 가오리가 쓴 다른 장르의 작품을 준비 중입니다. 이런 것도 기획, 마케팅 방법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기자) 국내 출판시장에서 일본문학의 비중이 매우 커진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검증이 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까지 우후죽순으로 출간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담출판사가 가진 책임도 막중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소담출판사의 가까운 계획이 듣고 싶습니다.

이장선) 현재 준비하고 있는 가장 큰 프로젝트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기획한 첫 한일공동소설 <먼 하늘 가까운 바다>입니다. 츠지 히토나리와 소설가 공지영이 현재 일간지에 연재하고 있는 이 작품을 12월에 펴낼 예정입니다. 이 작품이 한일문화교류의 큰 구심점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고 역시, 두 작가분의 바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앞으로 어떤 출판기획자가 되고 싶습니까?

이장선) (한참을 망설이다가) 음...저는 성격이 급한 편입니다. (웃음) 그래서 그런지 일이 없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구요. 5년간 출판 기획 일을 하면서 이 분야가 저의 성향과 딱 들어 맞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일의 특성상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은데 저는 사람 만나는 일을 즐깁니다. 게다가 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문학을 좋아해서 일이야기를 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시간으로 느껴집니다.

기획하는 작품이 소위 대박, 큰 베스트셀러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이든 그 책을 사랑하는 독자는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 한명의 독자가 원하더라도 그 책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출판인으로서 마음가짐입니다. 앞으로 꿈은 정말 좋은 책을 만들어서 제가 기획하는 그 한권의 책이 독자 분들에게 100%이상의 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일이 없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타고난 출판인 이장선 차장은 끝내 베일 뒤에 남겠다며 사진촬영을 고사했다. 에쿠니 가오리를 닮은 그녀의 가녀린 체구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어떤 것과도 혼합되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문학의 독자적 ‘관사’처럼 분명하고 아름다웠다.

손님이 방문하면 차 대접을 한다는 나무로 된 사랑방과, 자연 휴양림을 연상케 하는 수풀이 우거진 정원, 삼청동 주택의 입구를 닮은 고풍스러운 입구. 기묘한 공간 ‘소담’은 에쿠니 가오리문학처럼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매력의 `아방궁`이었다.

(사진 = `에쿠니 가오리 사진 제공 - 소담출판사`)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e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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