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말하셨지 "버드나무를 심어라"
아버지는 말하셨지 "버드나무를 심어라"
  • 북데일리
  • 승인 2005.10.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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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 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양성배출하며 기업이익은 계속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며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 한다”

드디어, 유한양행 고 유일한 회장(1895~1971)에 대한 평전이 나왔다. 소설가 조성기 숭실대 교수(문예창작과)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유일한 평전>(작은 씨앗. 2005)은 유일한의 일생과 가족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던 기업 비화가 담겨있다.

평전의 내용 중 독자를 놀라게 하는 유일한의 사업기질 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유일한의 부친 유기연의 혜안(慧眼)이다. 늘 미래를 바라보고 준비했던 유기연은 자신의 땅을 지켜낼 방법을 생각해냈다.

“우리 땅의 경계를 표시해 두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경계를 다라 버드나무를 심는 거야. 우리 가문이 버들 유씨가 아니냐. 그런데 나무는 말라죽을 수도 있고 누가 뽑아 갈 수도 있으니 나무 밑에 버들 유자를 새긴 사기그릇을 묻어두는 거야. 그러면 나무가 없어져도 그 사기그릇은 없어지지 않아. 경계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거지. 일본 놈들이 어떡하든지 소유권을 분명히 한다는 명목으로 측량 기구를 들고 나타날 거야. 그때 너희들이 땅에 묻힌 사기그릇을 가지고 증거를 대란 말이야”

유기연은 일단 버들 ‘柳’ 자를 넣은 그릇을 대량 주문했고 버드나무를 집 앞 채마밭에 심었다. 주문한 사기그릇이 도착하자 땅을 두길 파서 사기그릇을 먼저 묻고 그 위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유기연의 선견지명은 적중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고 땅의 소유권을 분명히 하기 위해 대대적인 측량사업을 벌였다. 당의 경계가 불분명해 소유권에 문제가 있는 땅들은 쉽게 차지 할 수 있었다. 유기연의 대평원 역시 측량 받았다.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심어놓은 버드나무들은 베어지고 강풍에 꺾이고 해서 경계가 애매했으나 버드나무 흔적이 있던 곳 밑에는 고스란히 ‘柳’ 가 새겨진 사기그릇들이 있었다. 결국 땅은 모두 한 평도 남김없이 전부 지주에게 소유권 등기가 이루어졌다. 사업가로서 유기연의 선견지명은 유일한에게 고스란히 물려졌다.

소설가 조성기의 유려한 문체와 극적 구성이 돋보이는 책은 아버지 유기연의 일화를 비롯해 사업가로서 성장하기까지 유일한이 겪었던 파란만장한 생을 인상적으로 그렸다. 오늘날 기업인 뿐 아니라 미래를 꿈꾸는 청춘들에게 이 책은 삶의 지침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CEO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고 유일한 회장. 일자리를 만들고 인재 배출을 기업의 최고 덕목으로 꼽았던 진정한 기업인의 뒷모습은 여전히 빛난다.

(사진 = 1. 도미 직전 부친 유기연과 함께 2. 고교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맹활약한 유일한(앞줄 중앙) 3. 1941년 딸 재라와 함께, 출처 www.yuhan.co.kr)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e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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