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조림과 정치학이 만난 사연
갈치조림과 정치학이 만난 사연
  • 북데일리
  • 승인 2008.03.0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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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제목이 별나다. <갈치조림 정치학>(생각의나무. 2008)이라니. 어색한 두 단어의 조합이 요즘 말로 쌩뚱맞다. 무슨 연유일까.

저자인 권혁범 대전대학교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가 겪었던 일이다. 그는 달포 전 몇 명의 지식인들과 저녁을 먹었다. 그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교수, 자유기고가, 기자, 작가 등 대체로 개혁적이고 비판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A교수의 행동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리가 좁아 다리를 오므려 앉아야 했는데, 오직 그만 다리와 어깨를 쭉 펴고 앉아 있었다. 그런가보다 했다.

문제는 갈치조림 정식을 주문한 이후였다. 갈치조림은 아주 적은 양만 나왔다. 1인당 한 토막씩 먹기도 버거워 보였다. 접시는 중앙에 놓여 멀리 앉은 사람은 먹기 힘든 모양새였다.

A교수는 잘 먹었다. 발언을 하는 내내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갈치조림은 금세 동이 났고, 아주 작은 갈치만 남아 있었다. A 교수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여전히 입은 멈추지 않았다. 사회정의와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 냈다. 이윽고 식사를 다 마친 A교수는 다른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저자는 이 작은 사건에서 지식인의 표리부동함을 떠올린다. “갈치조림 나눠먹기는 정치적 실천의 미니어처”라는 생각에서다. 동시에 “A교수가 과연 사회정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소외된 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지적, 실천적 작업에 진정한 관심이 있을까?”라고 묻는다.

이는 비단 A교수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사회에 숨어 있는 사이비 지식인들을 향한 비수다.

이처럼 책은 저자가 생활 속에서 겪었던 다양한 체험, 보고 들은 현상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이때 정치학적 해석을 덧붙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를 꼬집는다. 국익과 민족으로 대표되는 모호한 실체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글은 대부분 5페이지 내외로 짧다. 제목처럼 가벼운 소재로 시작해 진중한 의문을 끌어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생경한 정치학 용어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는 정치학 이론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는 포기하고 책을 덮는 대신 과감히 페이지를 넘기길 권한다. 뒤에 나올 쉽고 영양가 있는 글을 놓치는 것 보다는 낫다. 이를테면 말미에 영화 ‘선생 김봉두‘를 보고 인권 문제를 연결해내는 저자의 `삐딱한` 시각을 그냥 흘려버리기엔 아깝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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