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동물농장 보다 재밌는 불량한 동물얘기
TV동물농장 보다 재밌는 불량한 동물얘기
  • 북데일리
  • 승인 2005.10.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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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발생한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탈출 대소동은 대공원 측의 관리소홀과 코끼리 공연 주최측이 공연 흥행이 부진하자 무리하게 홍보전을 벌이다 발생한 `예고된 사고`였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동물이 동물답게 살 권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줬다.

대형 동물원도 각종 테마 놀이동산에 밀려 손님 끌기에 어려운 상황에서 작고 가난한 동물원 소식이 궁금할 턱이 없겠지만 동물들과 함게 희노애락을 나누며 그 안에서 ‘특별한 인생을 배웠다’ 말하는 어느 수의사의 따뜻한 글은 작은 감동을 준다.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 (김영사. 2005)는 광주의 ‘우치동물원’에서 펼쳐지는 동물들의 삶을 담았다. 자주 접해보지 못한 동물들에 대한 정보와 동물원의 소소한 일상이 일기처럼 적혀있다.

저자 최종욱씨는 동물과 대화하길 간절히 바라는 소박한 마음의 수의사다. 전남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우유검사원, 공무원, 연구원을 거쳐 ‘최고의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꿈을 찾아 치열한 경쟁률에 승리, 우치 동물원 수의사가 됐다.

흔히 사람이 동물을 길들인다 생각하는데 저자는 ‘동물들에게 길들여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천직을 찾아 방황하던 중에 동물에게 이끌림을 당해 지금에 이르렀다면서 이제는 ‘길들여진’ 삶이 아주 행복하다고 밝힌다.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는 담백하고 신기하고 재미있다.

운 없게 잡혀 인간들에 의해 ‘사육’이나 당하는 힘없고 초라한 ‘짐승’이 아니다. 인간에게 인간의 세계와 법칙이 존재하듯 동물도 마찬가지로 자신들만의 생존법칙이 있다. 야생의 습성을 잃어버리긴 했어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다른 세계의 생물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도 생기고, 때로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에 친근감도 느낀다.

인간세계에 ‘질 높은 삶’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 바람이 분다. 흥미로운 점은 ‘잘 먹고 잘 살자’의 욕구는 사람뿐이 아니라 동물들도 웰빙족이 있다는 사실. 알려진 예로 일본원숭이가 있다. 온천욕하고 사과를 씻어 먹는 이 거만한 원숭이족은 동물원에서도 습성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과일을 주면 껍질은 먹지 않고 알맹이만 파 먹는다. 건강웰빙은 아니지만 ‘품위’를 추구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홍부리황새와 관학은 ‘전망확보’에 관해선 의욕이 대단하다. 날이면 날마다 꼭대기에 앉으려 서로 쟁탈전을 벌이곤 한다. 침팬지는 우리에 던져주는 웬만한 것에는 눈도 끔뻑 안한다. 바나나 이상의 과일을 줘야 반기고 사탕이나 과자도 껍질을 까지 않은 채 던져줘야 겨우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뱀은 대단한 미식가다. 살아있는 것을 잡아먹으면서 스릴과 흥미를 느끼는 모양인지 단식투쟁도 불사한다. ‘배고프면 먹겠지’하고 내버려두면 안된다. 몇 달씩도 버티는 한 고집을 보인다. 심장질환이 많은 기린은 중국사람이 양파로 성인병을 예방하듯 양파를 몹시 잘 먹다.

엽기적인 동물들 이야기도 유쾌하다. 우치 동물원 엽기 넘버원은 침팬지다. 똥을 누어 벽에 문지르는 것과 사과를 잘게 씹어 다진 후 한데 뭉쳐서 다시 껌처럼 씹는 기괴한 습관이 있다. 똥 바르는 것은 영역표시라고 이해할 만 하나 사과껌은 저자도 ‘더럽기 그지 없다’고 표현한다. 그도 그럴것이 사과는 껍질을 벗긴 상태에선 공기중에 노출되면 갈색으로 변하는데 그걸 씹었다 뱉었다 하며 먹고 있는 모양새는 흡사 똥을 씹는 것과 비슷하단다.

이에 질세라 더러운 거에 한 몫 더 거드는 동물이 있으니 바로 하마다. 똥을 싸는 동시에 먼지털이개 같은 꼬리를 휘둘러 온 벽을 똥으로 도배한다. 게다가 제놈이 노는 물속까지 똥으로 범벅을 하고야 만족해 하는 기괴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마들이 사는 곳에는 온전한 똥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코끼리 집단 탈출 사건이 빡빡한 공연 스케줄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 탓이라는 씁쓸한 소식과 대조적으로 예산이 넉넉지 않아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동물 식구를 들여오는 작은 동물원이지만 잘 먹으면 ‘야생성이 살아 있는 것 같아’ 안심하고, 동물이 낮잠을 자는지 관찰하면서 동물원의 사계절을 담아낸 책은 군더더기 없고 쉽고 인간사보다 더 인간적이다.

[북데일리 송보경 기자]ccio@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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