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일이] 조선시대 탐관오리가 많았던 진짜 이유
[책속에 이런일이] 조선시대 탐관오리가 많았던 진짜 이유
  • 김시은 인턴기자
  • 승인 2016.04.15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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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한국사>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화이트페이퍼=김시은 인턴기자] 조선시대에는 왜 그토록 탐관오리가 많았을까. 사극이나 영화에서 흔히 묘사하는 것처럼 관직에 오른 사람들이 모두 재물에 눈이 멀고 탐욕스러워서일까. <말하지 않는 한국사>(페이퍼로드.2016)의 대답은 ‘아니요’다.

애초에 세금을 과도했다. 책에 따르면 근본적인 이유는 관리의 탐욕 아니라 조세 시스템이다. 조선 시대에는 세금을 소득에 대해 부과하지 않고 무조건 '한양'에서 정한만큼 부과했다. 나라에서 비단 100만 필을 내라고 하면 각 지방 수령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100만 필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나주 현감에게 떨어진 할당량이 100만 필 중 10만 필이면 그는 10만 필을 걷기 위해 아이나 죽은 사람, 노인에게도 세금을 물었다. 나주 성인은 3만 명인데 규정상 한 명에게는 두 필까지만 걷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부과 대상을 늘려 나머지 4만 필을 채우는 것이다.

언론이 굉장히 발달했던 시대였음에도 부당함을 전하는 상소문은 무용지물이었다. 나주 현감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양도, 관찰사도 알고 있었다. 나라에서 애초에 세금을 많이 부과해 일어난 수탈이라는 사실을.

조선 시대에는 분명 탐관오리가 많았다. 하지만 한 ‘개인’이 특히 부패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부패한 것은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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