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일이] 굴비는 비굴을 거꾸로 한 말...굴비에 얽힌 충성맹세
[책속에 이런일이] 굴비는 비굴을 거꾸로 한 말...굴비에 얽힌 충성맹세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6.04.14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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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우리 문화> 김진섭 지음 | 지성사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굴비는 비굴을 거꾸로 한 말이다.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이 말린 조기에 붙인 이름이다. 이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자겸은 고려 인종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권력을 휘둘렀던 외척 대신이었지만, 왕비인 자기 딸을 시켜 왕의 독살을 시도하고 왕위를 찬탈할 야망을 품었다는 죄목으로 인종 4년(1126년) 전라도 법성포로 유배당한다.

유배지였던 법성포는 조기를 ‘전라도 명태’라고 부를 만큼 풍부했다. 특히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를 천지어(天知漁)라고 불렀는데, 그 지역의 특산물이었다. 현지에서 처음 천지어를 맛본 이자겸은 천지어 맛도 모르고 정권 다툼에 빠져있던 시절을 후회했다. 이자겸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혼자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말린 조기와 자신의 심경을 담은 장문을 글을 인종에게 올렸다.

글에는 억울하게 죄를 받아 귀양을 왔지만, 결코 비관하지 않고 초야에서 다시 복권될 때를 기다리겠다는 다짐과 임금에게 일편단심으로 충성하겠다는 맹세가 담겼다. 그날이 올 때까지 결코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말린 조기를 ‘비굴(非屈)’이라는 글자의 순서를 바꿔 ‘굴비(屈非)’라는 이름으로 진상했다. (111~112쪽) 일부 수정

이자겸의 결연한 뜻이 임금에게 닿았을까. 역사적 사실 따르면 인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종을 핍박하고 임금을 깔봤던 이자겸을 다시 불러올릴 리 없었다. 그해 12월 이자겸은 유배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굴비에 얽힌 사연은 <이야기 우리 문화>(지성사.2016)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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