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년전 명품 브랜드 `이화행` 아시나요
2백년전 명품 브랜드 `이화행` 아시나요
  • 북데일리
  • 승인 2008.02.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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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의 힘은 크다. 어떤 상품이라도 그 로고만 찍혀 있으면 불티나게 팔린다.

약 200년 전 중국에도 명품 브랜드가 있었다. 바로 ‘이화행(怡和行)’이다. 여기서 행은 청나라 때 대외무역을 담당하던 중국 상인들의 상점을 말한다. 이화행은 19세기 초중반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상인으로 불렸던 오병감의 상점이다.

특히 인기가 있었던 건 차(茶)였다. 당시 이화행은 무이산에 있는 차밭에서 생산한 공부차를 영국의 기창양행(旗昌洋行)(Russell & Co)을 통해 팔았다. 여기에는 이화행이라는 상표를 붙였는데, 이는 런던, 암스테르담, 뉴욕, 필라델피아 등 세계의 유명 도시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오병감은 한 번도 중국을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거래를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사실이다.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

<제국의 상점>(소나무. 2008)의 저자 리궈룽은 “외국 상인과 편지로만 거래했다”고 밝힌다. 믿기 어렵지만 실제 그랬다.

당시 중국 내 외국 상관에는 무역에 종사하며, 풍부한 국제 무역 경험을 가진 미국 상인들이 많았다. 오병감은 이들을 잘 활용했다. 건의와 의견을 잘 받아들이고, 일한 만큼에 상응하는 대가를 충분히 지불했다.

그는 이들을 믿고 해외 투자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미국 사업가 포브스와 만난 일화는 유명하다. 1829년 16살의 나이로 중국에 와 일을 배우다 오병감의 양자가 됐다. 이후 24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50만 멕시코 은화를 번 채였다. 이 돈을 철도 사업에 투자한 그는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미국 최대의 철도 사업가가 됐다.

책은 이 외에 청나라 강희제 시절 명성을 떨쳤던 중국 상인과 무역 일화를 소개한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 자료는 이해를 돕는다. 중국 CCTV가 제작한 ‘광주13행 역사 다큐멘터리’가 원작이다.

(사진제공=소나무)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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