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사랑하려면 같이 울어주어야 하리
누군가 사랑하려면 같이 울어주어야 하리
  • 북데일리
  • 승인 2005.10.2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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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건넌다”

복효근 시인의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이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풀을 찾아 수만리를 이동하는 누우떼의 행렬이 있다. 때론 두려워하면서 멈칫거리다가도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를 읽으며 시린 겨울 강을 건너보자.

강으로 가는 길은 녹녹치 않다. 반듯하지 않은 길 위에 울퉁불퉁 돋아난 것 많다.

“모퉁이가 없다면/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뭐가 그립기나 하겠어//......//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거야/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 거지”(‘모퉁이’中)

걸리적거리는 거 없이 밋밋하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세웠다가 눕힐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굴뚝의 비애는/무너지지 않고 제 자지를 세우고 있다는 거//쌀 안치는 소리,/끝없는 잉걸불의 열정,/환한 가난의 역사도/뱉고 토해낸 지 오래된//저 굴뚝은 사실 무너지기 위해/가까스로 서 있다/삶에 그을린 병든 사내들이/쿵, 하고 바닥에 누워/이 세상의 뒤쪽에서 술상 차리듯이”(‘굴뚝’中)

그러나 그눔의 자지는 생을 멋지게 지휘하다 풀썩 쓰러지는 아픔도 갖게 된다.

“소나무의 일생은 눈의 무게가 아니라/세상의 무게를 걱정하는 데 바쳐야 하는 것,/천지간에 석 자도 더 되는 눈이 쌓이고 쌓여도/소나무는 장엄하게 지휘자처럼 팔을 벌리고/폭설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하는 것,//그러다가 소나무는 저렇게 끝장을 보고 말았을 것이다/눈을 받쳐들었던 팔이 한순간에 부러지며 허공을 때리고/그때 허공은 크게 한번 쩡, 하고 울었을 것이다/....../저게 실패라면 당신이나 나나 저렇게 한번 실패해봐야 하는 것이다”(‘독야청청’中)

삶은 그렇게 자빠질 수 있으므로 누워서 무언가를 떠받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러다가 문득 아득해져서, 나 혼자밖에 아낄 줄 모르는 나도/툇마루가 될 수 있나,/생각했다//툇마루가 되어서/누구에게 밤하늘의 별이 몇 됫박이나 되는지 누워 헤아려보게 하나,/언제쯤이나 가지런히 썰어놓은 애호박이 오그라들며 말라가는 냄새를 받쳐들고 있게 되나,/자꾸 생각하게 되었다”(‘툇마루가 되는 일’)

툇마루에 누워 오래된 집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드러?고 싶어서 나무는/마루가 되었고/잡히고 싶어서 강철은/문고리가 되었고,/날아가고 싶어서 서까래는/추녀가 되었겠지/(추녀는 아마 새가 되고 싶었는지도)/치켜올리고 싶은 게 있어서 아궁이는/굴뚝이 되었을 테고,/나뒹굴고 싶어서 주전자는/찌그려졌을 테지”(‘빈집’中)

드러?고 잡히고 날아가고 치켜올리고 나뒹굴고 싶은 마음의 빈집에서 나와, 밭두둑에 고추 한 주 심어보려니,

“고추 모는 한 주도 심지 못하고/나는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는데/동네 노인 한분이 지나가시다가, 두둑을 더 높게 올려붙여야 쓰것소, 한다/....../괭이는 땅속의 돌과 부딪치며 또 실없이 불꽃을 튀길 것인가/저 혼자 잠시,망설였다/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같이 울어주어야 한다는 것을/괭이는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돌의 울음’中)

그래, 사랑은 같이 울어주어야 하는 것. 울면서 뼛속까지 사무치는 강을 건너는 것.

“너에게 가려고/나는 강을 만들었다//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울음은 강을 만들었다/너에게 가려고”(‘강’)

겨울 강을 건너 저 멀리 숲을 보니 나무의 간격이 오롯하다. 간격과 간격이 숲을 이룬다는 것을 강을 건너고 나서야 알겠다. 악어떼 우글거리는 강을 건너는 누우떼처럼...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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