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국어 말하는 노부부의 ‘아름다운 여행’
7개국어 말하는 노부부의 ‘아름다운 여행’
  • 북데일리
  • 승인 2005.10.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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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KBS TV에서 방영된 가정의 달 특집방송 ‘아주 특별한 인연’에서는 ‘보르네오 섬의 산타’ 오정면(70)-문달님(68)씨 부부의 사연이 소개 됐다. 방송에선 농한기 3개월동안 부부가 떠나는 보르네오 여행을 동행 취재, 18년간 가난과 질병에 처한 현지인들에게 사비를 들여 봉사활동을 펼치는 훈훈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20마지기 논에 농사를 지어 딸 다섯, 아들 하나 육남매를 모두 대학 공부 시켜낸 부부의 아름답고 특별한 여행의 시작은 감기약 하나로 한 어린이의 병을 낫게 해 준 것이다. 그 후 해마다 농한기가 되면 일년동안 벌어들인 수입으로 각종 약품과 옷가지 들을 챙겨 보르네오 섬으로 향했다. 농사꾼 답게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법도 알려주고 챙겨간 상비약으로 의료혜택이 전혀 없는 환자들을 찾아 도움을 준다.

한해 한해가 더해지면서 처음에는 외면하던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맞아주게 됐다. 오히려 이제는 부부가 방문하는 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져 매년 짐 꾸리는 일이 늘어만 간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 (대산출판사. 2005)는 방송에서 못다한 오정면씨 부부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돈 많은 재력가도 아니고, 의술을 펼치는 의사도 아니지만 건강한 몸 이끌고 몸소 찾아가 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아파하며 사랑을 전하는 부부의 진솔한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오정면씨 부부는 이제 7개 국어를 하는 ‘만능 외국어 커플’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배우고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영어는 대학에서 배운 실력으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일본어는 일제시대를 겪은 나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중국어는 한자 세대 이다보니 본격적으로 공부하자 다른 언어보다 더 쉽게 습득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 등 보르네오 섬을 주심으로 쓰이는 다양한 원주민 언어를 익히는 것이었다.

다른 언어에 비해 교재를 구하기도 힘들고 학원이나 학교는 더욱 찾기 힘든 와중에 부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독학’.

마땅한 교재가 없으니 여행때 마다 들은 말들은 그때그때 메모해 놓고 질문했다. 하루 중 짬 나는 시간은 새벽 시간 뿐. 부부는 독학을 위해 성경을 교재로 삼았다. 늘 읽는 책인데다 어느 정도 그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쉰이 훌쩍 넘어 시작한 공부라 그리 만만치는 않다. 어제 익히고 오늘 들여다 보면 새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

“무슨 말이 하고 돌아서면 모르겠고, 분명히 알았는데, 써먹을라카만 머릿속이 하얘지니...도통 바보가 된 것 같아예”

아내의 말에 오준면씨도 한 마디 거든다

“그렁께 젊은 사람들 공부하는 것매로 그래 가이고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법이야. 젊은 사람보다 몇 배로 공부해야 지우 따라갈 수 있응께 그래라도 해야지 뭐 우째여”

지금도 부부가 가장 열심히 하는 공부는 외국어 공부다.

매일 같이 열심히 공부하는 외국어들을 얼마나 써먹을지 모르지만 배우고 싶은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삶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공부를 하는 동안 새로운 만남을 꿈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 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

오정면씨 부부에게 사람답게 산다는 건 ‘수없이 많은 감동을 느끼는 것’. 세상 어떤 값진 재물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을 부부는 넘쳐나듯 느끼며 살고 있다. 그래서 부부는 스스로를 ‘진짜 부자’라고 말한다.

책 말미, 부부의 큰딸이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아 쓴 편지글은 부부의 삶이 주는 교훈이 어떠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사진 = 영화 `죽어도 좋아` 스틸 컷) [북데일리 송보경 기자]ccio@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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