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광의 방] ① "다시 태어나도 김훈 팬"
[독서광의 방] ① "다시 태어나도 김훈 팬"
  • 북데일리
  • 승인 2008.01.29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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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의 방] 부천시 송내동에 사는 이현주 씨

[북데일리] 마트, 바텐더, 막노동을 전전하며 빚을 갚던 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떠올렸다. 버는 족족 이자로 들어가다 보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떤 책을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다.“삶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작가의 목소리는 그 어떤 격언보다 실감났다. “살아야 겠다”는 각오가 솟구쳤다. 책이 그녀를 살린 것이다.김훈의 <칼의 노래>(생각의나무. 2001)였다.

부천시 송내동에 사는 이현주(29)씨. 그녀는 자칭 ‘김훈 마니아’다. 김훈의 모든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물론, 작가 사진을 붙여 놓고 거울 보듯 한다. 그녀에게 김훈은 ‘원더 걸즈’ 못지않은 스타다. 심지어 “다시 태어나면 김훈으로 살고 싶다”는 고백도 서슴지 않는다.

그녀의 유별난 ‘김훈 사랑’을 탐구하기 위해 최근 자택을 찾았다. 1천 5백여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서가는 탐욕스런 수집력을 자랑했다. 온, 오프라인 서점은 물론 유명 헌책방 곳곳을 찾아다니며 모은 단행본, 전집, 사전 등이 즐비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 것은 김훈 콜렉션이었다. 책을 소개하던 그녀는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씨는 “절망 속에서 나를 구한 건 바로 김훈”이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절절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화재, 사기, 뿔뿔이 헤어진 가족...

이씨는 대기업에 다니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남동생을 둔 다복한 가정의 맏딸이었다. 그러다 한파를 맞았다. 1998년 불의의 화재를 당한 것. 가재도구 전부가 불탔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까지 큰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빚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온 힘을 다해 빚을 갚던 아버지는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결국,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빚과의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빚 갚기에 나선 것은 2002년의 일. 혼자 감당해야 할 액수만 수 천만 원에 달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못한 것은 바로 동생 때문이었다.

동생은 돈 벌기에 나섰다. 이씨와 마찬가지로 갚아야 할 돈이 산더미 같았다. 낮에는 막노동, 새벽에는 대리운전까지 해야 했다. 피로가 몰려 올 때는 죽음 직전의 위험 운행을 하기도 했다. 이씨는 그런 동생을 보며 수차례 피울음을 넘겼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 던 중 김훈을 만났다. <칼의 노래>가 출간 된 2001년 겨울이었다.

‘단독자’ 김훈, 그를 좋아하는 이유

그야말로 춥고 배고팠던 시절. 이씨는 불 조차 때지 않은 냉방에서 지냈다.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지하 방이었다. 곁엔 아무도 없었다. 이때 펴든 <칼의 노래>는 죽비처럼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울부짖던 이씨에게 책은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답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타협하거나 비난하는 데 익숙하지만 이순신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죠. 그건 포기나 좌절과는 달라요. 삶 자체를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건 단독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거예요. 그 모습이 의지가 됐어요. 위안도 됐고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동경했는지도 모르죠.”

김훈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후, 이씨의 삶은 변했다. 삶을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않게 됐다. “삶을 수긍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김훈의 팬이 됐다. 전작을 사 모은 것은 물론 빠짐없이 읽었다. 그 덕에 문학평론가 못지않은 비평 실력을 갖게 됐다. 그가 펼쳐 보인 작품 간의 상관관계는 귀담아 들을 만 했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은 완결성을 갖고 있어요.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불화 하는 동시에 성장하는 인물이죠. 반면 <현의 노래>는 세상을 자신만의 음으로 연주하는 사람이에요. 성숙의 과정이에요. <남한산성>은 그 인간군상을 총체적으로 담은 작품이에요. 전작에서 보여준 인물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한 그릇에 담아 낸 것이죠.”

이씨는 거듭 “김훈처럼 쓰고 싶다”고 반복했다. 이는 김훈의 ‘단문체’를 따라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김훈처럼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다시 태어나면 김훈으로 살고 싶어요. 그처럼 삶이 묻어나는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는 저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준 준 작가입니다.”

  • ②편에 이어집니다.
  • (사진 - 김대욱 기자)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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