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⑥“반복하라 김연수처럼”
[이젊은작가]⑥“반복하라 김연수처럼”
  • 북데일리
  • 승인 2008.01.14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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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는 한국 문학의 부흥을 위해 `젊은 작가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음율, 색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내기 작가들과의 `싱싱한` 만남을 통해 우리 문학의 미래를 가늠해 봅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천재는 소수지만, 장인은 다수다. 노력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이라면 장인이 될 수 있다. 단, 여기에는 ‘무기한’이라는 전제가 따른다. 이를 견뎌 낸 이만이 장인이 된다.

소설가 김연수는 이 반복의 시련을 통과한 젊은 장인이다. 동서문학상(2001, 꾿빠이, 이상), 동인문학상(2003,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대산문학상(2005,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황순원문학상(2007, 달로 간 코미디언) 등 각종 문학상을 거머쥐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프로 소설가’로 불린다.

그의 최근 작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 2007)은 물오른 글쓰기 실력을 보여준다. 1991년 ‘5월 항쟁’을 돌아보는 이 소설은 달콤한 로맨스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탄탄하게 융합시킨다. 김연수는 이 작품으로 `2007년 북데일리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작가` 소설 부문에 선정된 바 있다.

장편 소설 출간과 더불어 하진의 <기다림>(시공사. 2007)과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문학동네. 2007) 외 몇 권의 동화를 번역하며 바쁜 한 해를 보낸 그를 최근 도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소설 쓰기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들어봤다.

“소설을 보면 ‘완벽주의자’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실제 성격은 어떠세요?”

-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약간 신경질적인 이미지로 봐요. 그런데 실제로는 화를 잘 안내요. 낼 일도 많지 않고요. 사실 성격이 좀 좋은 편이에요. (웃음) 완벽주의 되게 싫어해요. 특히 안 바뀌는 거, 초지일관 이런 거 정말 싫어해요. 저는 했던 말 바꾸고 이런 거 좋아하거든요.

“저도 했던 말 기억을 못 해요. 제일 싫어하는 게 ‘너 그때 그랬잖아?’라고 따지는 사람들이에요.”

- 제가 짜증내는 유일한 순간이 바로 그때에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단순한 성격도 있나 봐요?”

- 약간은요.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트러블이 거의 없었어요. 동료나 상사가 짜증을 내면 “오늘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나?” “오다 넘어져 다쳤나” “아침 배변이 안좋았나”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러니까 누가 짜증을 내도 그게 나한테까지 오지를 않아요. 그건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설 쓸 때는 좀 다르지만.

“어떻게 달라요?”

- 시간만 있으면 더 잘 쓸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늘 시간에 대해 생각하죠. 계간지에 연재 할 때는 거의 잠을 못자요. 그게 책으로 만들어져 나올 때도 그렇고요. 고칠 게 눈에 보이니까. 안할 수가 없어요. 그걸 완벽주의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 꺼 같고 누구라도 그럴 거 에요. 결국 원고를 보낼 때는 “지금은 여기까지 밖에 안 되는 구나”라는 생각으로 그만두고 그래요. 제가 생각할 때 재능이라는 건 ‘집중력’의 문제 같아요. 얼마만큼 시간을 그 안에 쏟아 부을 수 있는지의 정도 차이가 재능이에요. 만약 모든 시간을 한 일에 쓸 수 있다, 그러면 정말 재능이 넘치는 거죠. 저는 집중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반복적으로 듣는 것도 그렇고. 두루두루 이것저것 아는 것보다 하나를 반복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같은 책도 계속 읽고 그런 편이에요. 마치 회사 일 하듯이 책 읽는 것도 글 쓰는 것도 반복하면 늘어요.

“반복하는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 처음엔 소설을 이루는 것, 주제, 인물, 구성 같은 것들을 한번엔 못하더라도 하나씩 다 해보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소설에만 집중해 보자, 그런 생각으로 몇 년을 보냈어요. 그게 유일한 관심사였거든요. 영화나 드라마도 안보고 계속 책 읽고 글만 썼어요. 그렇게 한 5년 한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게 어렵지 않게 됐어요. 계속 그 과정을 반복한거죠. 지금도 글 쓸 때는 작업실 밖에 나가질 않아요. 틈틈이 자면서 계속 써요. 일단 나가서 누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거나 하면 집중력이 흩어지거든요.

“황순원 문학상 시상식 때 김훈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가끔 김연수에게 전화해 놀러 가자고 하는데 원고 마감이 있다며 거절한 적이 많다. 젊은 놈이 저렇게 열심인데 내가 놀아도 되겠나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다’고 하셨어요”

- (웃음) 종일 글만 쓴다고 볼 수는 없는데, 실제로 나가지는 않아요. 잊어버리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소설을 쓸 때는 그 인물을 전부 이해해야 하거든요. 그럴 땐 음악을 반복적으로 들어요. 하루 종일 한 곡을 계속 들을 때도 있어요. 인물마다 음악을 주고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 쓸 때까지 계속 들으면 집중이 잘 돼요.

“‘프로 소설가’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소설 쓰는 일이 재미있어요?”

- 처음보다 오히려 요즘이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죠.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랄까. 계속 써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한동안 했고요. 등단한지는 오래됐지만 직접 쓴 지는 7년 정도 밖에 안 됐어요. 그전까지는 다른 일을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은 기자였어요. 몇 년 그렇게 지내다 마음을 고쳐먹었죠. 소설을 쓰자고. 그때부터는 재미있었어요. 그 재미라는 건 이런 거예요. 어느 정도 기술 적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크게 고민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요즘은 뭘 쓰겠다 정하기만 하면 아주 즐거워져요.

“언제 처음 작가가 되기로 결심 했어요?”

- 원래 글을 잘 못썼어요. 상을 받은 적도 없어요. 책은 많이 읽었어요. 제 꿈은 이과 쪽 일을 하면서 책을 읽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가끔 번역을 하면 좋겠다 생각했고. 읽고 싶은 책을 먼저 읽을 수 있으니까 참 좋은 직업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러다 영문과에 들어갔고 번역을 하게 됐죠. 작가에 대한 생각은 고등학교 때 출판사 모니터 요원을 하면서 시작된 거 같아요. 그 일을 계기로 대학 때 류시화 작가를 만나게 됐어요. 번역도 하고 시도 쓰시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은거죠. 그때부터 열심히 시를 썼어요. 중요한 건 제가 그렇게 글을 잘 쓰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늘 생각하는 거지만 사람은 마음먹으면 뭐든 될 수 있어요. 뭐가 되고 싶다 그러면 하면 돼요. 그럼 그게 될 수 있는 거죠.

“전업 작가로 살아보니 어떠세요.”

- 원래 소설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래서 회사도 다녔어요. 기자 일을 했는데 회사 일도 잘 맞았어요. 직장이라는 게 어느 곳이나 몇 년 다니면 집 같잖아요. 동료들도 가족 같고. 권태도 생기긴 하지만 일로 인한 카타르시스도 있고. 문제는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다는 거예요. 학교처럼은 아니더라도 1년을 일했으면 2개월은 쉬어 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또 직급이 높아지니까 회의가 너무 많더라고요. 낮에도 밤에도 계속 회의를 해요. 그때 일하고 글 쓰는 거 하고 병행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빨리 전업을 하는 것보다는 어떤 일이든 하다가 전업을 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여주셨어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어요?”

- 독일에 혼자 몇 개월 다녀 온 적이 있어요. 그때 연재 제의를 받아서 시작하게 된 건데 처음에는 사진 한 장하고 캐릭터 몇 개 밖에 없었어요. 사실 어렵게 썼어요. 연재 할 때마다 포기하고 싶었거든요. 전체적인 흐름이나 결말을 정해 놓지 않고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도 있기는 했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 그런 걸 그리고 싶었어요. 각각의 인물들이 나름의 여정을 좇아가며 그런 것들을 찾는 이야기.

“다른 작품에서도 그렇고 시대를 펼쳐 놓기는 하지만 개별 인물에 초점을 맞추시는 것 같아요.”

- 써보니까 소설이라는 게 사람을 이해하는 문제더라고요. 대상은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문득 떠올린 사람일 수도 있죠. 지금은 달리기를 하는 소년 이야기를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저도 그 소년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지금으로서는. 그런데 스스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면 많은 이야기가 나와요. 지금 어떤 상태인지, 과거에는 어땠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묻는 거죠. 그게 소설이에요. 거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저와 좀 맞지가 않아요. 전에는 소설이 시대에 ‘참여’ 한다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달라진 거 같아요. 지금 중요한 문제는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를 설명해주는 작업 같아요. 소설이 그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소설 안 쓸 땐 주로 뭐하세요.”

- 달리기요. 작업실이 호수 공원 앞에 있는데 달리기를 자주 해요. 밤에는 주로 일을 하고 낮에 달려요. 낮에는 한가하거든요. 달릴 때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나 걸어 다니는 분들 빼고는 저 밖에 없어요. 지금은 뻔뻔스럽게 달리지만 처음 회사 그만두고는 밖에 잘 못나갔어요. 젊은 사람이 아파트 놀이터 이런 데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볼까봐. 지금은 적응이 잘 돼요. 달리는 게 좋아요.

“소설가가 된 것에 만족하세요?”

- 오늘도 그 생각을 하면서 왔어요. 전 아마 소설가가 안 됐으면 이런 사람이 됐을 거예요. 이해심이 전혀 없거나 온갖 편견에 사로 잡혀 세상을 비관하고 남의 핑계를 대는 사람.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변했어요. 일단 참을성이 강해졌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또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도 않고요. 정말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니까요. 모두 소설 덕분이에요. 기회가 되면 간증 같은 걸 한번 해볼까 싶어요. (웃음) ‘소설이 한 사람을 구한 이야기’ 뭐 이런 걸로요. 소설가가 되길 참 잘했다고 자주 생각해요.

“행복해 보입니다. 앞으로 쓸 이야기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 1930년대 만주 독립운동사에 나오는 민생단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요.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와 여자가 나오고 죽음이 등장해요. 상반기쯤에 책으로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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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신기수 사진전문기자)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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