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위해서라면 대머리라도 괜찮아"
"동생 위해서라면 대머리라도 괜찮아"
  • 북데일리
  • 승인 2007.12.21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데일리] 몇 해 전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아 아들을 키우기 힘겨웠던 엄마가 놀이공원에서 아들의 손을 부러 놓아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또한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맞춰 생활한 덕분에, 둘째 아들과 남편 등 가족관계는 서먹하고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처럼 식구 중 누구 한사람이 큰 병에 걸리면 다른 가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환자는 침대에서 병마와 싸우고, 가족들은 그러한 현실과 싸우며 더 나은 치료법을 찾고 실질적으로 병원비를 걱정하는 나날을 보내게 되기 마련이다. <드럼, 소녀 & 위험한 파이>(시공사. 2007)는 백혈병 환자를 둔 한 가정의 이야기로, 환자 가족의 고통에 촛점을 맞춘 성장소설이다.

열 세살 스티븐에게는 다섯 살짜리 남동생 제프리라는 조금 귀찮은 동생이 있다. 드러머를 꿈꾸는 스티븐이 유명한 락 스타인 듯 착각하고 매일 졸졸 쫓아다니며 숭배하기 일쑤. 그러면서도 무슨 ‘위험한 파이’를 만들겠다며 형이 아끼는 드럼 스틱을 가지고 말썽을 부리는 사고뭉치다. 단, 백혈병에 걸리기 전까지 말이다.

교사였던 엄마는 학교를 그만두고 제프리 병간호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아빠는 엄청난 병원비에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고군분투다. 이런 상황에서 스티브는 부모님의 관심 밖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동생이 아프다는 현실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자연스럽게 공부는 뒷전 좋아하는 드럼 연주에만 심취한다.

하지만 늘 발랄하고 귀엽던 동생 제프리가 병원에만 다녀오면 생기를 잃었다. 더구나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동생은 나날이 쇠약해졌다. 음식을 먹고 구토를 하는 것은 다반사, 머리카락이 빠져 주위 친구들에게 ‘대머리’라고 놀림을 받았다. 그런 동생을 보는 스티브의 마음은 점점 아파왔다.

스티브는 조금씩 동생의 병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제프리를 위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형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주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이 유쾌하면서도 가슴 따뜻하게 펼쳐진다.

스티브가 ‘형 노릇’을 톡톡히 하는 장면은 바로 대머리라는 놀림에 상처받은 제프리를 위로하는 모습에서 절정에 달한다.

친구의 놀림에 상처를 받은 제프리는 남몰래 눈물을 흘렸고, 뒤늦게 울고 있는 동생의 모습을 발견한 스티브가 자초지정을 알게된 후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때 어린 동생은 “그러면 형도 내가 대머리인 걸 알아차릴까봐”라고 대답했다. 우상과도 같은 형에게만큼은 자신의 민둥머리를 보여주기 싫었던 동생의 마음은 스티브를 울렸다.

결국 스티브는 고민 끝에 아빠의 전기면도기로 자신의 머리를 밀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말한다.

“어떠냐, 제프리? 어젯밤 네가 잠든 뒤에 이렇게 했어. 머리카락이 없으니 네가 아주 멋져 보이더라고. 그래서 나도 ‘제프리 스타일’을 한번 해 보려고. 이제 여자애들이 너를 좋아하듯이 이 형도 좋아하지 않을까?”

스티브는 그제야 깨달았다. 동생이 있다는 건 특히 암과 투병중인 동생을 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지만 동생이 없다는 건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 닥쳐도 삶은 계속 흘러가기 마련. 그 혼란스럽고 안타까운 시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 내고 흘러가는 시간을 사랑으로 의미 있게 채우는 방법을 터득한 소년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

[홍무진 기자 fila9090@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