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포토] 강인하고 잔혹한 일본의 여신
[북포토] 강인하고 잔혹한 일본의 여신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6.02.18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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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기> 기리노 나쓰오 지음 |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찌푸린 눈살이 험상궂게 올라간 여인이 보인다. 무척 화가 난 것 같다.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얼굴이다. 두 팔은 길고 검은 머리칼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가슴에선 시커먼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는 듯 하다. 튼튼한 밧줄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다. 꽁꽁 묶여 있는 저 매듭을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

그녀는 등에 큰 산을 짊어지고 있다. 그 뒤로 보이는 구름 속에 빨간 초승달과 노란 해가 떠있다. 이 여인은 누굴까?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의 거장’ 기리노 나쓰오의 장편소설 <여신기>(문학동네. 2016)의 표지 그림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일본 신화 최초의 부부 신이자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 숭배되고 있는 ‘이자나미’다. 그녀는 죽은 자들의 나라 ‘황천국’의 여신이기도하다.

머나먼 남쪽 ‘바다뱀 섬’에는 한 집안의 자매를 무녀로 모시는 풍습이 있다. 해와 낮의 세계를 맡아 각종 제사를 관장하는 언니 ‘가미쿠’와 달과 어둠의 세계에서 죽은 이들을 지켜야 하는 동생 ‘나미마’. 자신의 운명을 비관한 나미마는 사랑하는 남편 ‘마히토’와 함께 섬에서 도망친다. 하지만 그녀는 이유도 모른 채 마히토의 손에 목졸려 죽고 바닷 속에 던져진다. 섬의 규율을 어기고 진정한 운명을 쟁취했다고 기뻐했는데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른 죽음이었다. 어째서 사랑하는 남편은 그녀를 죽인 것일까?

황천국에서 여전히 의혹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녀는 여신 이자나미를 만난다. 그녀 역시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태. 이자나미는 남편에 대한 복수로 하루에 천 명의 인간에게 죽음을 내리며 분노를 달래고 있었는데...

배신한 연인을 용서하지 않고 운명에 맞서는 강인하고 잔혹한 여신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쉽게 접하기 힘든 일본의 신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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