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이책] 삶의 응달에서 건져낸 유쾌한 이야기들
[추천 이책] 삶의 응달에서 건져낸 유쾌한 이야기들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6.02.11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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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 너구리> 이시백 지음 | 한겨레출판사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신간 <응달 너구리>(한겨레출판사. 2016)는 농촌과 삶의 주변부를 그려온 이시백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그는 '제2의 이문구'라 불리며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꽃 도둑이다>로 채만식문학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다. 이 책은 우리네 삶의 민낯이 희비극으로 뒤엉킨 열한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 <응달 너구리>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농촌의 모습을 그렸다. 제3세계 외교관을 지낸 ‘황정식’은 은퇴 후 시골로 내려와 살기로 한다. 그것은 외국 생활을 하며 늘 꿈꾸던 삶이었다. 그는 땅을 사는 과정에서 현지 농사꾼들을 “탄자니아 원주민들하고 똑 닮았다”며 무시하고 기만한다.

하지만 ‘응달 너구리’라 불리는 농사꾼 ‘삼봉’에게 쩔쩔 매는 상황에 처한다. 어수룩하게만 보이는 삼봉이 응달 너구리가 무슨 뜻인지 황에게 설명한다.

“아, 응달 너구리가 응달 너구리지 벨 뜻이 있것슈.

너구리 두 마리가 골짜구닐 새루 두구 마주 보구 살았대지 뭐유. 근디 그늘배기 굴에서 겨울을 난 응달 너구리는 맞은편 양지짝을 보니께 발써 봄이 온 거잖유. 그래 굴에서 기어 나와 먹이를 찾아 먹구 살아났는디, 반대짝 양지바른 굴에 사는 너구리는 여적지 눈이 안 녹은 그늘배기를 보구설람에 ‘아, 안즉두 한겨울이구나’ 하구 마냥 굴속에 머물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지 뭐유.

그래서 보기엔 영 춥구 딱혀두 그 나름으루 의뭉스럽게 살아가는 인생을 응달 너구리라 헌다는디, 내야 뭐 의뭉스러운 꾀래두 낼 재주나 있나유? 그저 벤소 깐에 세워 놓은 묵은 빗자루쥬, 뭐.” (120쪽~121쪽)

설명을 들은 황은 “자신이야말로 영락없이 양달배기에서 굶어 죽은 너구리요, 변소 칸에 세워놓은 묵은 빗자루”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헛똑똑이 같은 황의 모습이 코믹하고 통쾌하다.

<잔설>에서는 한 마을의 이장 선거를 이야기하면서 연평도와 4대강, 그리고 빨갱이로 통칭되는 이데올로기 의식을 담아낸다. <백중>은 첫사랑 영심을 잊지 못하는 재선의 에피소드를 통해 구제역의 한 단면을 이야기한다. <번지 없는 주막>에서는 욕쟁이 할머니의 ‘마지막 주막’을 보여주며 4대강과 관련한 정치적인 실책들을 풍자한다.

책 말미에는 정아은 소설가와의 대담을 실었다. 그의 소설들이 “독자를 불편하게 하고 해결책을 얘기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평가에 대해 그는 말한다. “작가는 문제가 되는 모순을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는 거고, 판단과 선택은 독자들이 해야 한다.” 이어 그는 “우리를 기만했던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사회학자나 정치인들의 몫”이라고 전한다. 소설가로서 동시대의 고민과 생각을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낸 그의 소설들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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