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흉내못낼 뻘, `그 말랑말랑한 힘`
도시가 흉내못낼 뻘, `그 말랑말랑한 힘`
  • 북데일리
  • 승인 2005.10.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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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그라’(경상도), ‘서래유’(충청도), ‘인나랑게’(전라도), ‘일떠서라’(?)

몇 년 전 발기부전치료제가 고개 숙인 남자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할 때, 화제가 된 상품들입니다. ‘일떠서라’는 아마 북한에서 들여온 제품 같고요, 자매품으로 ‘다그쳐라’도 있다 합니다.

어쨌든 순 자연산 무공해 발기부전치료제를 들고 온 시인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함민복 시인의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을 온몸으로 느껴 봅시다.

“결국/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일/24평 벼랑의 집에 살기 위해/42층 벼랑의 직장으로 출근하고/좀더 튼튼한 벼랑에 취직하기 위해/새벽부터 도서관에 가고 가다가/속도의 벼랑인 길 위에서 굴러 떨어져 죽기도 하며” (‘옥탑방’)

옥탑방에 서서 둘러보니 도시에서 무엇을 세우는 일이란 결국 꺾이고 추락하는 일입니다. 거대하게 솟아오른 딱딱한 건물들을 보면서 자신의 건물이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도시는 딱딱하다/점점 더 딱딱해진다/뜨거워진다//......//딱딱한 것들을 부수고/더운 곳에 물을 대며/살아가던 농촌에도/딱딱한 건물들이 들어선다//뭐 좀 말랑말랑한 게 없을까” (‘감촉여행’)

대저 ‘선천성 상사병’에 걸린 사람에게 딱히 처방전은 없는 것이어서, 시인은 옥탑방에서 홀로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삐뚤삐뚤/날면서도/꽃송이 찾아 앉는/나비를 보아라//마음아”(‘나를 위로하며’)

“꽃에게로 다가가면/부드러趾?찔려//삐거나 부은 마음/금세/환해지고/선해지니//봄엔/아무/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봄 꽃’)

대침을 한방 맞으니 몸이 나른해진다. 꾸역꾸역 짐을 챙겨 강화도로 가는 길, 도시의 건물들이 성추행범 처럼 바짝 따라 붙습니다.

“김포평야에 아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논과 밭을 일군다는 일은/가능한 한 땅에 수평을 잡는 일/바다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수평에서의 삶/수천 년 걸쳐 만들진 농토에//수직의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김포평야’)

하늘에 닿으려는 바벨탑 같은 건축물을 벗어나 낯선 고향에 오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낯설지 않던 도시를 떠돌다/낯선 고향에 돌아왔네//......//여자 몸 속에 아이 하나 못 심고/사십이 다 되어 홀로 돌아와/살아온 길 잠시 벗어보네/낯선 고향에서 쉬이 잠 오지 않네” (‘귀향’)

마흔이 훌쩍 넘은 노총각의 밤은 길기만 하다. 허나 어쩌란 말인가. 예술의 전당 개나리꽃 같은 그대를 ‘서울역 그 식당’에 그대로 두고 올 수 밖에요. 그때처럼 아무 일 없는 듯, 바다로 나가는 시인.

“부드러운 물/딱딱하나 뼈//어찌/옆으로 누운 나무를/몸 속에 키우느냐/뼈나무가 네 모양이구나/비늘 입새 참 가지런하다//물살에 흔들리는/네 몸 전체가/물 속/또 하나의 잎새구나” (‘물고기’)

‘나무는 새들의 긴 다리다 새들은 나무의 그림자다’고 하였으니, 어쩌면 바다는 또 다른 흙인가 보다. 그 흙과 흙의 경계에서 비로소 가야할 ‘길’이 보인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말랑말랑한 힘/말랑말랑한 힘” (‘뻘’)

뻘은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고, 흙과 또 다른 흙을 이어주는 끈이기도 하다. 그 경계를 묶을 말뚝을 박는 시인의 하초가 탱탱하게 솟아오른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긴 정치망 말이나 김 말도//....../좌우로 또는 앞뒤로 흔들어야 한다/힘으로 내리 박는 것이 아니라/....../뻘이 말뚝을 빨아들여 점점 빨리 깊이 빨아주어/정말 외설스럽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흔들어주어야 한다//수평이 수직을 세워” (‘뻘에 말뚝 박는 법’)

말뚝 박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발기하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시인의 뻘과 같은 낮은 집이 커 보인다. 말랑말랑한 게 정말 외설스럽다는 느낌이 들도록 단단해 보인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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