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을 고민하는 이에게 권하는 소설
실존을 고민하는 이에게 권하는 소설
  • 북데일리
  • 승인 2007.11.0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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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독일 학교 김나지움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이순을 앞에 둔 그의 삶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흡사 ‘박물관의 조형물’ 같다. 그런 그가 생애 최초의 일탈을 감행한다.

출근길에 만난 한 여인 때문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자살을 시도하는 그녀를 몸을 던져 막는다. 그리고 ‘모국어’가 뭐냐고 묻는다. 이에 여인은 “포르투게스”라고만 답한다. 태어나 처음 듣는 단어였다. 독특한 울림이 났다.

여자의 발음에 매료된 남자. 그는 낯선 세계에 빠져든다. 우연히 손에 넣은 포르투갈 소설 <언어의 연금술사>를 가지고 일정도 기한도 정해지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

스위스 출신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전2권)(들녘. 2007)는 이렇게 시작한다.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교수이기도 한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는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건가?”

소설의 화두는 실존적이다. 작가는 극중 인물의 입을 빌려 글쓰기를 실존과 언어의 문제로 바라본다. 내가 인식하는 자아와 타인의 눈에 드러난 자아, 남이 말하는 나와 내가 말하는 나의 간극. 이를 파고드는 작가의 집요함은 ‘움베르토 에코’를 떠오르게 한다.

그레고리우스를 리스본으로 이끌었다, 삶의 터전으로 데려오는 ‘야간열차’는 인생이라는 역정을 의미하는 일종의 ‘메타포(은유)’ 다. 모든 관계에 끝이 있듯, 인생이란 역정 역시 언젠가는 종착역에 닿기 마련. 소설은 여행의 시작과 끝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는 것,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 모두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독자가 얻는 것은 은밀한 여운. 소설 속 인물과 동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삶을 들여다 볼 여유도 얻는다. 쉽고 가벼운 번역 소설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 흔히 만나기 어려운 진중한 작품이다. ‘천천히’ ‘오래’ 읽고 싶은 독자에게 권한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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