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포스트잇] ‘한 평’의 공간만을 가진 남자
[책속의 포스트잇] ‘한 평’의 공간만을 가진 남자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6.01.08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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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의 남자> 왕상한 지음 | 은행나무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나는 ‘한 평坪의 남자’다. 집안에서 편하게 쉴 수 있는 내 공간은 고작 한 평도 안 되다고 서운해하며 투덜댄다, 속으로만.

‘한 평의 남자’는 엉뚱하게도 내가 시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다. <한 잎의 여자>라는 시가 있다. 오래 돼서 시 내용은 다 잊어버리고, ‘물푸레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라는 구절만 맴맴 돌며 제목이 주는 심상이 오래 남았던 시다.

그런데 시의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요즘 남자들의 집안에서의 위치를 살펴보다가, 집안에서 남자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의 넓이를 잰다면 채 한 평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툭 튀어나온 표현이었다. 너무 과한 해석인가.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확신이 들 정도다.” (p.61)

쓸쓸한 오십대 중년의 자화상을 그린 <한 평의 남자>(은행나무. 2015)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저자 왕상한은 법학교수이자 시사교양 프로그램 진행자이며 외교통상전문가이다.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위 ‘성공한 남자’도 외롭고 서럽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보면 쉽게 공감이 간다.

30~40대의 직장 남성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회사에서 일한다. 아침 일찍 출근했다 저녁 늦게 돌아오면 집은 빈 것처럼 적막하다. 아이들은 잠들었는지 잠든 척하는지 인기척이 없고 아내도 형식적인 인사만 건네고 이내 잠들어 버린다. 말없이 소파에 누워 TV 채널을 켜면 검은 브라운관 속에는 처량한 한 남자가 보인다.

“어쩌다 시간이 나는 저녁이나 주말에 집에 있다 보면 어딘지 모른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여기는 분명 우리 집이고, 이들은 분명 내 가족인데 나만 물에 뜬 기름 같고 어쩐지 내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집안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소파 위에 한 평, 침대 위에 한 평 그렇게 한 평의 남자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묵직한 슬픔이 내려앉는다. 내가 원한 것은 이런 삶이 아니었다.” (p.63)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 온 우리의 가장들의 비애가 묻어나는 글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돌아온 집에서도 ‘한 평’ 정도의 공간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삶이라니 안타깝다. 가족들이여, 새해에는 우리의 가장을 알아봐 주자. 집에 돌아온 그들을 따듯하게 맞아주고 온기있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 보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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