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새물 맞은 시인 `직선 위에서 떨다`
청계천 새물 맞은 시인 `직선 위에서 떨다`
  • 북데일리
  • 승인 2005.10.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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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변 아파트는 평당 2000만원을 기준으로 가격 저항이 예상된다”

이 한마디가 청계천 복원이 갖는 복음이다. 청계천의 땀과 눈물의 역사는 복원의 뒤편으로 다시 복개되는 듯하다. 이영광 시인의 <직선 위에서 떨다>(창비. 2003)를 따라 청계천을 지나가 보자.

“나는 아니야, 하지만/너도 아니니까 잘 가/우리 다시는 마음 열지 말자//을지로에서 한 잔 종로에서 두 잔/마시고 욕하고 외면한 다음/여기 안암로터리/돌아서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이/그도 결국 혼자였음을 알려준다” (‘귀가’중에서)

을지로에서 1차하고, 청계천을 지나 종로에서 2차를 했나보다. 청계천을 지나가다 헌책방에 잠시 들른다.

“원수의 멸망을 보려거든 그가 늙을 때까지 기다려라/늙으면 필연코 추해진다//......//신간 코너에서 베스트셀러 코너로,/재고 도서로 쌓였다가 다시 무수한 손을 거쳐/지루한 세일 기간 동안 싸구려로/드디어 제값으로 팔리기 위해 나와 앉은 헌책들” (‘헌책들’)

수중에 단돈 이십 몇만원 밖에 없다는 전 대통령이 청계천을 구경할 때, 시장은 행여 똥물이 튈까봐 멀리 떨어져 있었단다. 루쉰은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고 했는데, 그날 제대로 패지 않아서 ‘새물맞이’ 대신에 ‘똥물맞이’가 되어버렸다. 시인은 그 물을 어떻게 보낼까.

“서 있는 물/물 아닌 물/매달려/거꾸로 벌받는 물,/무슨 죄를 지으면/저렇게 투명한 알몸으로 서는가/출렁이던 푸른 살이 침묵의 흰 뼈가 되었으므로/폭포는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흘려 보낸 물살들이 멀리 함부로 썩어/아무것도 기르지 못하는 걸 폭포는 안다” (‘빙폭1’)

늙고 추하고 함부로 썩은 것들이 그득한 곳에서 시인은 향긋한 물의 노래를 듣는다.

“밤 숲은 아주 작은 빛들의 모임 같습니다 오색을 쏟아내는 전기의 집에 담겨 제가 당신을 꿈처럼 잊은 날도 있었습니다만, 몽매한 제 내부에도 간혹 닮은 한 잎의 밝음이 있어 치렁한 억새 손 사이 향긋한 당신의 물 노래를 듣게 합니다 저는 흘러, 이 숲의 끝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이끌고 가는 어둠의 심연, 제가 얼마나 헤매야 그 곳에 닿겠습니까 당신은 왜 저에게 형형한 밤 새의 눈을 주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그리움의 두 발을 주셨습니까” (‘숲’중에서)

그리움의 두 발을 끌고 집으로 가는 새벽 길, 어쩌면 생사의 경계인 외나무다리를 만난다. 술이 확 깬다.

“고운사 가는길/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수정할 수 없는 직선이다//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이 먼 곳까지/꼿꼿이 물러나와/물 불어 계곡 험한 날/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엎드려 받아주고 있다//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두려움 없는 삶도/스스로 떨지 않은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직선 위에서 떨다’)

출렁이는 생의 다리를 건넌 후 보는 서울의 풍경이 눈에 환하다.

"황사며칠, 서울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흐릿해진 풍경 어딘가에 봄 내음이 스며/조용조용 연둣빛으로 옮겨가는 중이다/나는 세상을 너무 자세히 보려 했던 모양이다/살아 있는 것은 모두?어딘가로 번져가는 중이기에/수묵같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기에/안경도수가 높아갈수록 모든 것은 자취를 감추고/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봄날`중에서)

그러다 길섶에 핀 나팔꽃을 보고 옛사랑의 아픔을 다독거린다.

“가시 난 대추나무를 친친 감고 올라간 나팔꽃 줄기, 그대를 망설이면서도 징하게 닿고 싶던 그날의 몸살 같아 끝까지 올라갈 수 없어 그만 자기의?끝에서 망울지는 꽃봉오리, 사랑이란 가시나무 한그루를 알몸으로 품는 일 아니겠느냐 입을 활짝 벌린 침묵 아니겠느냐” (‘나팔꽃’)

사랑하는 사람의 집을 찾아, 세월을 에돌아 도착한 곳에, 다소곳이 옷고름 여민 문이 있다.

“가지 말아야 했던 곳/범접해선 안되었던 숱한 내부들/사람의 집 사랑의 집 세월의 집/더럽혀진 발길이 함부로 밟고 들어가/지나보면 다 바깥이었다//날 허락하지 않는 어떤 내부가 있다는 사실,/그러므로 한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다는 사실을/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무엇보다도, 그대의 텅빈 바깥에 있다//가을 바람 은행잎의 비 맞으며/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닿아서야/그곳에 단정히 여민 문이 있었음을 안다” (‘문’)

차마 들어가지 못한 그 집,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세월의 상처들을 녹인다.

“고드름들은 누군가 나에게 겨눈/창끝 같기도 하고/간밤 내가 그에게 드러낸 적의 같기도 하다/그러나, 자세히 보면 고드름은/뾰족한 끝에서부터 한방울씩 녹아내리고 있다/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이제 누군가를 용서하고 있다/이제야 누군가에게 용서받고 있다” (‘고드름’ 중에서)

이제 사방에 눈이 내리고, 시인은 마음속의 마을 속에서 나와 우리에게 나지막하게 묻는다.

“천지가 눈을 쓴 채 가만히 있다/지붕들도 나무들도/각이 안으로 무너졌다/만만하여,/만만치 않다/마을 속의 마음/마음 속의 마을/겉으로 부풀어 둥글다/안팎이 있다면 다들/꼴이 같으리/당신, 누구와 한편/되어본 적 있어?/당신 편 하얗게 지우고/누구 편에 가 서본 적 있어?/물어쌓는 눈발” (‘눈 온 아침’중에서)

자신을 하얗게 지우고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물살, 그 위로 잡목 숲에 긁힌 인생들을 엎드려 받아주는 다리가 있다. 격랑의 세월, 부들부들 떨며 다리를 건넜을 사람에게 향긋한 물의 노래 들려올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새물을 맞을 자격이 있지 않은지 여울은 묻고 있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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