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에 들어선 중년의 하루 돌아보기
내리막에 들어선 중년의 하루 돌아보기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2.15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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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나기> 김석희 글 / 열림원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돌아봅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그 세월의 굽이굽이에 서 있는 나를, 또는 내 그림자를 돌아봅니다.” (p.366)

소설집 <하루나기>(열림원. 2015)의 작가 김석희의 말이다. 그는 1988년 <이상의 날개>로 등단했다. 이후 소설가보다는 번역가로 활동 했다. 이 책은 그의 중단편소설 아홉 편과 등단작을 함께 실었다. 작품을 통해 20대의 방황과 40대의 현실을 돌아본다.

표제작 <하루나기>에는 중년의 샐러리맨 ‘김종인’을 시작으로 여러 인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김종인은 토요일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인사를 한다. 그와 한 아파트에 사는 ‘염승섭’은 같이 인사를 하지만 상대방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삼진기획 부장으로 있는 염승섭. 그는 전 직장 상사의 딸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대학 동창 ‘현진걸’을 만난다.

17년 만에 만난 현진걸은 도서출판 천야의 주간이다. 현진걸은 염승섭의 명함을 보고 열등감에 괜히 짜증이 난다. 그가 사무실로 돌아오니 고교 동창 ‘이효식’의 사망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급하게 작업해야 할 소설 때문에 현진걸은 장례식장에도 못가고 번역가 ‘채만석’에게 전화를 건다. 채만석은 자신의 고장난 컴퓨터 수리를 위해 김종인에게 전화를 걸지만...

“대화의 마지막 주제는 ‘중년의 꿈’이었다. 인생길 반 고비에 이르러 이제는 내리막에 들어선 나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왠지 허무하고,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 해도 두려움의 벽이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머뭇거리고 망설이다 주저앉고 마는 나이. 바람 한 줄기에도 그게 태풍의 낌새인 줄 알아채고 재빨리 움츠리는 나이. 뒤에서는 떼밀리고 앞에서는 짓눌려 숨막힌 세대. 아무리 그렇더라도, 중년이라고 꿈이 없을 것인가. ‘파초의 꿈’도 있고 ‘갈매기의 꿈’도 다 있는데.” (p.123)

주인공들은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소식을 통해 과거와 마주한다. 때론 ‘허수아비’처럼, ‘시간의 늪’에 빠져버린 것처럼 흘러가버린 젊음이 아련하다. ‘단층’처럼 그때와 지금의 시간이 어긋났음을 인식하는 순간 아득함이 느껴진다.

작가는 모든 작품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써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그들의 직업도 대부분 소설가나 번역가다.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지만 마치 연작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분량은 짧지만 매 작품마다 아쉬움과 긴 여운을 남긴다. 앞으로 그의 소설을 종종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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