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똥기저귀조차 받아들이는 일... 박범신 소설 <당신>
사랑은 똥기저귀조차 받아들이는 일... 박범신 소설 <당신>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2.10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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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박범신 글 / 문학동네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박범신 소설 <당신>은 치매에 걸린 노부부의 삶과 사랑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치매라는 고통스러운 질병이 삶과 사랑 안에서 역설적이게도 ‘인생의 선물’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채워준 기저귀를 빼내고 짐짓 침대와 방바닥에 오줌을 갈긴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눈이 마주치면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웃었다... 똥과 오줌이 범벅된 기저귀로 내 얼굴을 문대는 일도 그럴 때였다. 모든 걸 단순하고 재미있는 놀이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치매 걸린 남편은 장난꾸러기 소년이 되어 똥기저귀를 아내의 얼굴에 문댄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간병의 순간이 이처럼 로맨틱할 수 있을까. 아내가 남편을 사랑스럽게 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 나이 일흔이 넘어서야 남편을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내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채 남편에게 온 여자다. 평생 잔잔한 호수 같은 모습으로 아내를 대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자신의 딸로 키웠다. 남편은 치매에 걸린 이후 평생 헌신하고 살며 억눌렀던 감정의 덩어리들을 무섭게 쏟아낸다. 이를테면 수두에 걸린 딸아이를 내팽개치고 두 달여 동안 아이의 친부와 지내고 돌아온 아내를 대하는 두 개의 태도다.

“인혜야, 엄마 왔네, 저어기, 저기 엄마!” “들어와요. 그러고 서 있으니까 애가 울잖아요.” 1968년 과거 시공간의 남편은 원만한 표정으로 다감하게 말한다. 이에 반해 2013년 치매에 걸린 남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의 손바닥이 사정없이 내 뺨으로 날아들었다. 살똥스러운 손짓이었다. “나쁜 년!” (중략) “네년이 그러고도 에미야? 수두에 걸려 죽을 둥 살 둥 하는 어린 것을 팽개치고 사내놈을 만나러 집을 나가?” “나가! 무슨 낯짝으로 여기를 기어들어 와! 인혜는 이제 네 딸이 아니야, 내 딸이야!” -본문 중에서

소설은 이처럼 남편의 병증과 아내의 회상에 기대, 노부부의 현재 시점과 과거의 시공간을 종횡으로 오간다. 아내는 치매에 걸려 생경하고 거친 모습을 보이는 남편을 보며, 비로소 지난 삶의 순간들을 복기한다. 지난 시절 남편의 속마음을 죽어가는 남편을 보며 알게 된 것이다.

박범신의 이번 소설은 노년, 기억, 죽음과 애도, 그리고 사랑으로 대표된다. 특히 치매의 과정을 기록하는 곳곳의 문장들을 통해 삶의 본질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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