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로부터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뭐해요"
그녀로부터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뭐해요"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2.08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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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글 / 그책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뭐가 있을까? “네가 최고야, 보고 싶었어, 사랑해, 고마워.” 정도?

<보통의 존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 이석원이 6년 만에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그책. 2016)로 돌아왔다. 산문집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마치 사랑에 대한 한편의 자전소설을 읽는 듯 하다. 이야기와 산문이 독특한 형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책에 앞의 질문과 관련한 내용이 있다.

어느 날 나 ‘이석원’은 후배 작가의 소개로 전통찻집에서 한 여자와 소개팅을 하게 된다. 그녀는 서른두 살의 소아 정신과 의사다. 그녀는 현재 이혼 소송 중이고 딸이 하나 있다.

나는 마흔 두 살로 글을 쓰고 노래도 한다. 나도 이미 이혼을 한 경험이 있다. 나는 안면 콤플렉스가 지독하다. ‘부끄러워서’ 누가 앞에서 얼굴을 마주보는 걸 싫어한다. 스무 살 이후 사진 한 장 찍은 적이 없다. 그런 나를 위해 애인은 물론 그냥 여자 친구들도 늘 옆자리에 앉아줄 정도.

이 말을 들은 그녀도 선뜻 내 옆자리로 옮겨 앉는다. 새로운 관계는 이렇게 시작된다. 둘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수다를 떤다. 하지만 그 만남이 순탄치 많은 않다. 그녀가 제안하는 둘 만의 특별한 규칙 때문이다. 연락은 오로지 그녀만 먼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연락이라는 것도 잘 안하는 편이다. 자기를 좋아한다거나 보고 싶다는 감정 표현도 해서는 안되고 그런 감정도 갖지 말라. 등등. 다소 황당하지만 나는 선뜻 오케이를 한다. 그런 만남을 통해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끔은 세계가 전혀 없는 사람도 있더라. 그러니 상대의 입장에서 내가 품은 세계는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도 한 번쯤 생각을 해봐야 한다.” (p.84)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에게 연락한다. 밑도 끝도 없이 그녀가 보내오는 문자는 단 한 문장. “뭐해요?” 하지만 나에겐 그 말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산문집이라기 보다 오랜만에 달달한 연애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그의 이야기에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가슴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책 중간 중간 시나 에세이 같이 작가의 생각을 적어 놓은 짤막한 글들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서로를 가지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 단지 좋아하고 그리워하기 때문에 만나요. 그러니 누구도 누구의 것이 될 필요는 없는 거죠. 하여 나는 끝내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지는 못할 테지만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세요. 그건 내가 당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이치와도 같은 거니까요.” (p.300)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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