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변신, 前 은행대표의 `인생 참멋`
택시기사 변신, 前 은행대표의 `인생 참멋`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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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제주간지 `이코노믹 리뷰`에 독특한 이력을 가진 택시기사 3인방의 인터뷰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김기선씨는 전 영풍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였으며 정광조씨는 대우증권 지점장, 박세구씨는 삼립식품 부사장이었다. 4년전 택시 기사 유니폼으로 바꿔입은 이들은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인생 살맛 나게 하는 걸쭉한 막걸리같은 입담들을 쏟아냈다.

김기선 씨는 택시기사로 전업을 위해 조기 퇴직을 했다. 환갑 때 개인 택시를 갖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주주들이 내쫓을 때까지 버틸까 생각하다가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용기가 생겼다. 막상 회사를 벗어나니까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법인 택시 운전경력 3년을 채워 지난 1월 드디어 개인 택시를 갖게 되었고 올 7월 자전에세이 `즐거워라 택시 인생`(2005. 웅진닷컴)을 써냈다.

`택시기사` 김기선씨는 "내 나이 예순 둘이 되어서야 일하고 돈 버는 맛을 알게 되어 너무나 즐겁다"며 "여기저기 마음껏 돌아다녀서 좋고 타인들의 인생도 엿볼 수 있는가 하면 노년에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택시 기사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자신의 선택을 자랑스러워한다.

첫 택시영업을 나가던 날, 긴장한 나머지 첫 손님은 미터기를 꺼놓고 운행해 택시비를 날려버렸다. 실수를 만회하려고 이번에는 미터기를 계속 켜놓고 달리는 바람에 오는 손님, 가는 손님 다 놓쳐버렸다.

영업 이틀째, 첫날보다는 배짱이 생겼다. 한 남자 재수생 손님을 태우고 `오늘이 영업 둘째날`이라는 솔직한 인사로 대화의 물꼬를 터나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젊은 손님은 5천원을 주고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처음으로 팁 3천1백원을 챙겼다.

어느 날 시각장애인 손님이 탔다. 눈만 안 보일 뿐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며 동정하지 말라고 한다. 운행 중 거리 신호등과 내려야 할 맹학교를 정확히 가르쳐 주자 김씨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짜 시각장애인 맞습니까?" 웃으면서 대답하는 손님. "그럼 가짜 시각장애인도 있습니까? 허허허."

법인 택시는 회사에 사납금 채워넣는 것이 급선무다. 하루는 사납금이 모자라 고민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길에 서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학원 앞까지 태워다 주고는 택시비를 청구했다.아들은 "저기 있는 손님 태우세요"라고 말하고는 얼른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가끔 아들을 보면 "야, 택시비 언제 줄거야?"라며 아들을 다그치곤 한다.

개인 택시 운전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배가 남산만한 임신부를 태우고 가는 도중 신호 대기에 걸려 정지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뒷차가 김씨의 차를 들이받아 버렸다. 임신부는 그 충격으로 배가 아프다고 호소했고 김씨는 병원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다행히 뒷차가 들이받은 것은 교통 사고로 처리되었고 아기는 예정일을 한달이나 남겨두고 태어났지만 지금은 엄마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저자는 택시기사 인생이 가져다 주는 행복한 삶을 거듭 강조하며 장점과 단점까지 나름대로 정리했다.

택기 기사의 단점은 `사고의 위험`과 `몸과 마음의 피로` 단 2가지다. 하지만 장점은 무려 16가지에 달한다.

우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 또 80세가 넘어도 일할 수 있으니 정년이 없다, 쉬는 날에 등산이나 축구 등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자본이 필요없으니 망할 염려가 없다, 종업원 관리 등으로 골치 아플 필요가 없다, 겪어보지 못한 사회의 이면을 체험할 수 있고, 인생 상담도 가능하다, 혼자 하는 일이니 남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다, 일과가 끝난 후 집으로 일거리를 들고 갈 필요가 없다, 늘 긴장하고 자극을 받으니 치매 예방도 된다 등등...

저자는 "택시 기사를 하게 되면 부부 싸움을 막아주고 가정도 화목해진다. 아침에 부부싸움하고 나와서 저녁에 집에 들어가 그날 벌어들인 돈 내밀어 봐라. 내가 언제 돈 갖다 달랬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그 때 아내의 눈을 보면 살짝 웃고 있을 것이다"라며 다시 찾은 인생의 참멋을 은근히 자랑한다.

(그림 = 베스 바이즈만 作 `택시 드라이버`, 1995)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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