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임, 조경란, 김경주... 작가들의 감성 여행
함정임, 조경란, 김경주... 작가들의 감성 여행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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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사랑한 여행> 한은형 외 글 / 열림원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글쟁이의 여행 에세이는 글솜씨와 여행정보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러 작가가 참여했다면 독자로서는 다양한 외국의 호텔 뷔페를 맛보는 격이 될 터. <작가가 사랑한 여행>(열림원. 2015)이 그런 책이다. 함정임, 백영옥, 조경란, 김경주, 황희연을 비롯한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등 열 명이 여행을 떠났다. 특히 작가들의 고민과 사유, 추억, 감성이 읽는 재미를 준다.

소설가 함정임은 안데스 마추픽추를 방문했다.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묘사된 해변을 찾아간 것이다. 페루에서 그가 발견한 광경은 놀라웠다.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폐허를 둘러보며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가장 좋은 것은 뒤에 온다. 이 말은 페루에 가지 전까지만 성립된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마추픽추 정상에 올라서였다. 마추픽추에 가려거든 가장 뒤에 가라. 그렇지 않으면 그 어디를 가도 그 이하를 볼 것이다. 내게 가장 좋은 것이란 자연이 펼치는 경이로운 광경이 아니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한계를 무릅쓰고 거기에 무엇인가를 도모했던 흔적이다. 6000미터급 고봉준령으로 둘러싸인 성스러운 계곡을 지나 2800미터급 봉우리 사이에 숨은 듯 공중에 떠있는 옛 잉카인의 거처, 마추픽추가 바로 그런 곳이다.” (p.200)

마추픽추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같은 성찬을 하는지 싶다. 책은 소설가 한은형의 홋카이도 기행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홀로 떠난 여름 홋카이도 여행에서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써내려갔다.

“시간은 느긋하게 흐릅니다. 규정 속도가 오십킬리미터인 왕복 이차선 도로를 운전사는 사십 킬로미터도 못 되는 속도로 지나갑니다. 여름에요! 차도 별로 없고, 경적을 울리는 사람도 없어요. (중략) 앞과 뒤와 왼쪽과 오른쪽 모두 초록입니다. 산은 높지만 둥글고, 둥글기 때문에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산이라기보다는 두터운 초록 융단이 허공에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p.12~p.13)

알프스 산악지대인 이탈리아 돌로미티로 떠난 시인 박후기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자로서 미완의 10번 교향곡을 남기고 죽은 말러를 추억한다. 소설가 심윤경은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 섬에 있는 헤밍웨이하우스에서 헤밍웨이가 키웠던 고양이 ‘백설공주’의 후손들을 보고, 국립공원 에버글레이즈의 악어 떼와 새 떼를 관찰하고 “믿을 수 없이 풍요로운 여행이었다”고 전한다.

작가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여행지 이야기가 먼 이국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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