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의 셰익스피어’, 랭스턴 휴스의 주옥같은 단편들
‘할렘의 셰익스피어’, 랭스턴 휴스의 주옥같은 단편들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2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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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턴 휴스> 랭스턴 휴스 글 오세원 옮김 / 현대문학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미국 ‘흑인 문학의 거장 랭스턴 휴스’의 단편집이 나왔다. 40여 편의 글이 담긴 <랭스턴 휴스>(현대문학. 2015)다.

랭스턴 휴스는 1920년대 흑인들의 문화적 저항운동의 정점이었던 ‘할렘 르네상스’를 빛낸 작가다. 그는 백인도 흑인도 아닌 혼혈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그것을 글로 써냈다. 흑인 영가의 ‘솔(soul 영혼)’을 블루스와 시로 결합한 ‘재즈 시’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는 열여섯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소설, 일곱 권의 단편집과 자서전, 논픽션, 어린이 책, 역사책 및 수십 편의 극본과 오페라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글을 남겨 ‘할렘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린다.

첫 소설 ‘달빛 아래의 몸뚱이들’은 아프리카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선원들의 고단한 삶을 그리고 있다.

“날들이 가고 밤들이 지나갔다. 다시 날들이 가고 밤들이 지나갔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무연한 하늘은 별들이 총총하게 들어 찾다가는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다. 웨스트일래너호는 조용히 침묵하듯 떠 있었다. 카카오 콩은 이미 적재가 다 되었다. 열병에 걸린 선원 여섯 명은 육지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여전히 항해 지시는 도착하지 않았다.(중략)

수석 주방장은 사창가에서 병을 옮아 왔다. 조리장은 식량이 바닥나고 있다고 걱정을 했다. “멍청한 인간들이나 선원 생활을 해 먹는 거지.” 갑판장이 투덜댔다.” (p.12~p.13)

바로 뒤에 이어지는 ‘눈부신 그 사람’과 ‘꼬마 숫총각’은 연작 소설처럼 같은 배,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유가 뭐야?’는 이전까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고 또 저지를 생각도 없는 ‘나’가 배고픔 때문에 강도짓을 하게 된 이야기다. 나는 한 흑인의 꼬임으로 할렘 가에서 하룻밤에 몇 십 달러씩 돈을 쓰고 가는 백인을 터는 일일 돕게 된다. 그런데 돈과 옷, 신발까지 다 뺏긴 젊은 백인 청년은 그 사건이 ‘할렘에 와서 처음으로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스릴 만점’이었다고 말한다. 함께 강도짓을 한 흑인에게 속아 이전 보다 더 주린 배를 움켜쥐고 거릴 걸으며 나는 생각한다. “돈 많은 백인들은 도대체 왜 그런 식이지? 왜 행복하지가 않다는 거야?” 이유가 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작가는 시종일관 흑인 하층민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그는 짧고 재기 넘치는 단편들로 ‘할렘의 오 헨리’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번 책을 통해서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를 만날 수 있다.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그의 소설들은 색다른 이야기와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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