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수 있는 회사까지 죽일라..우량기업마저 위태로운 자금시장
살 수 있는 회사까지 죽일라..우량기업마저 위태로운 자금시장
  • 이혜지 기자
  • 승인 2015.11.19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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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이혜지 기자] 철강, 조선, 건설 업종을 중심으로 돈줄이 말라붙고 있는 회사채 시장 흐름이 갈수록 큰 이슈로 끓어오를 전망이다. 신용위험이 커진 만큼 돈 구하기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회사채 시장을 포함해 자금중개 혈맥이 굳어져가는 '돈맥경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어서다.

기관투자자들로선 업황이 나쁘고 실적이 부진한 기업 회사채에 투자하기가 여렵다. 그래도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지나친 양극화 등 시장 건강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회사채 시장에서 외면받는 3대 업종의 경우 구조적 맹점이 도마에 올랐다. 막대한 설비투자를 앞세운 중국 업체의 추격에 시달린 지는 오래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고질적인 저가 수주 관행에다 투자 자금을 제 때 돌려받지 못하고 수주량이 줄어드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것이 원인을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사채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회사채 발행시장 월간 순발행 규모는 지난 9월과 10월 각각 -3326억원과 -8097억원을 기록한 뒤 이달 들어 -1조3354억원으로 쪼그라들고 있다.

오래전부터 누적적으로 진행된 움직임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지점에선 전문가들의 평가가 같다. 하지만 구체적 진단에서는 우량 기업과 비우량 기업간 양극화 문제로 본 전문가도 있고 A등급 이하 포함 기업까지 회사채 미매각이 속출이 만연한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수주 산업을 중심으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고 있는 만큼 사업구조 조정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량 기업마저 위태 VS 양극화 심화일 뿐

최근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는데 대해 양극화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는 견해와 우량 기업마저 어려워지고 있다는 진단이 엇갈린다.

회사채 자금난은 국내 기업 전체에 만연한 상황이라는 심각한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대신증권 김수연 애널리스트는 "예전엔 제한된 취약업종, 등급이 낮은 업종 중심으로 회사채 인기가 없었지만 최근 우량 등급도 그렇다"고 지적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1~2년 만에 AA급 회사도 올해 상반기 어닝쇼크로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심각해졌다"고 덧붙였다.

반면에 양극화 연장선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유진투자증권 신동수 연구원은 "올해 BB급 이하 채권은 순상환됐고 신용스프레드도 확대돼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매출 이익이 넉넉히 뒷받침 되는 우량기업에만 회사채 투자자가 다 몰려 한계 기업까지 투자할 기관투자자들이 남아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 연구원은 "등급별로 금리 수익률을 봤을 때 금리 격차가 확 벌어지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회사채 시장에서 이미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기 때문"라고 설명했다.

◆ 자금조달난 내년까지 이어질 듯

상황진단의 톤이 매우 짙으냐 여부를 떠나 회사채로 인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태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공감대가 넓어졌다.

대신증권 김수연 애널리스트는 내년으로 넘어가도 회사채 수급 상황이 진전될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 이유로 기업의 펀더멘탈이 유의미하게 개선될 신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들었다. 김 애널리스트는 "덧붙여 국채에 비해 높은 가산금리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HMC투자증권 박진영 애널리스트는 "A급 이하 회사들이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은 회사채 수요가 없다는 반증이다"라고 지적했다. 박 애널리스트는 "불안감으로 비우량 기업, 한계 기업에 투자하길 꺼려하고 있고 내년까지 이런 분위기가 쉽게 돌아서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증권 백경윤 애널리스트는 "특히 건설, 수주, 철강 부문 회사채는 우량 기업 아니면 모두 약세다"며 "내년에도 채권 스프레드가 더 확대되거나 잘해야 보합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 돈맥경화 원인은 업계관행과 실적? 

자금조달 어려움이 집중된 3대 업종에 대해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둔화, 철강 산업에서 경쟁 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잘못된 건설업계 수주 관행을 문제로 꼽았다.

김수연 애널리스트는 "회사채를 발행해 대규모로 투자했지만 중국 경기 둔화와 실적이 연동되는 기업은 실적 충격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회계 처리, 잘못된 발주 관행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백경운 애널리스트는 "회사채 양극화는 등급별로도 심하지만 산업별로도 심하다"며 "건설 부문은 과거 해왔던 발주 관행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회계 처리도 정부 규제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아 정부에서도 계속 주의를 주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적 가시성을 높여 회계 처리를 한다는 것.

힘이 커진 중국 업체들에게 위협받는 국내 철강 산업 또한 구조적 위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백경운 애널리스트는 "사업 구조가 전체적으로 망가진 것은 아니지만 추가적인 성장은 무리가 있다"며 "중국은 설비를 엄청 부어 과잉 상태인데 중국과 경쟁하려는 국내 철강 산업은 힘든 상황으로 돌아설 변곡점에 와 있다"고 주장했다.

◆ 구조개혁 필수 VS 연착륙 유도 바람직

해법으로는 한계기업 또는 수주 악화로 실적이 부진한 업종의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구조개혁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놓고 두 갈래라 나뉜다. 한계기업을 정리하는 고강조 프로그램이어야 한다는 입장과 구조개혁은 연착륙을 유도하고 경쟁력을 키우는 쪽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으로 갈렸다.

백경운 연구원은 "정부 입장은 건설, 철강 상위 업계가 세계에 포진돼 있으니 구조개혁을 통해 잘하는 회사를 합쳐 더 좋은 회사를 만들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효율성을 높이든 방안을 생각해 보자는 것. 하지만 회사간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건설과 철강 업종은 오너에 의해 경영되므로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가망이 없는 분야에서 손 떼는 대신에 신성장 분야로 사업모델을 다시 짜고 군살을 빼는 진정한 구조조정을 채권금융기관과 기업이 손잡고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은행권 일각의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반면에 한계기업이 공급과잉 상태에서 수명을 연장 받는 것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멀쩡한 기업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마땅히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키우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크레딧 부문 김기명 연구원은 “한계기업들은 사실상 유지를 시켜 좋은 기업이 되기를 바라기에는 성장률 자체가 너무 떨어져 공급 과잉이 심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김기명 연구원은 “특히 조선사 가운데 이른바 '좀비기업' 성격이 강한 곳이 많은데 은행 지원으로 연명한다해서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기업이 정리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회생가능성을 살펴 경쟁력이 있는 기업을 찾아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LG경제연구원 채권 부문 이한득 연구원은 “기업의 특성에 따라 생존가능성을 엄밀하게 판단한 후 적합한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급능력이 없는 기업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핵심 경쟁력이 실제로 없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일시적 경영이나 유동성 문제만 해결하면 정상적인 기업이 될 수 있는지 기업의 회생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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