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나는 여행을 다녀야 살아지는 사람’
이병률, ‘나는 여행을 다녀야 살아지는 사람’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0.22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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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눠보자. 여행을 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사람과 여행을 다녀야 살아지는 사람. 이병률 시인은 단연 후자다. 그가 출간한 서적들이 그렇듯 여행을 다녀야만 살아지는 사람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달.2015)에는 그가 다닌 여행의 길목 길목에서 만난 작지만 소소하고 따뜻한 풍경들이 있다. 다음은 그가 여행에서 짧은 만남으로 가슴에 간직한 명장면이다.

두 사람은 기차에서 만났습니다. 여자는 몸이 조금 불편했고 남자는 무심했습니다. 모르는 사이이니 괜찮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여자와 남자는 기차에서 조각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았고 기차에서 내릴 때 남자가 여자를 조금 도와준 것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흐르는 시간도 흐르는 풍경도 여행자라서 괜찮았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숙소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우연이었습니다. 다시 만난 것은 처음과는 달랐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눈 입자만큼 각진 인생 이야기를 들었고 남자는 여자가 만든 뜨거운 감자 수프를 나란히 나눠 먹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에 했던 시간의 냄새도 떠올렸습니다. (중략) 두 사람은 다시 헤어져야 합니다. 여행자이기에 그쯤이야 괜찮을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가방을 끌고 길을 나섭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2층 창문을 열고 발코니에 나와 서서 손을 흔듭니다. 여자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남자의 손 흔드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잠깐만 기다리라 했습니다. 이번에는 남자가 자기 카메라를 가져와 오래 손 흔드는 여자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우산처럼 기억될 것입니다. 멀어지지만 괜찮을 것이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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