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 일이] 사납게 배고팠던 그 시절의 밥 한그릇
[책속에 이런 일이] 사납게 배고팠던 그 시절의 밥 한그릇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0.12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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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정미경기자] '사납게' 배고팠던 시절, 먹을 것이 없어 고통 받아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글이 있다.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한길사. 2015)은 박완서, 최일남, 성석제 등 열세 명의 작가들이 음식과 관련 된 구수한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소설가 공선옥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눈물 난다. 작가가 열 살 때, 일기검사를 하던 선생님이 불렀다.

“야, 공선옥 너는 어떻게 된 게 맨날 먹는 얘기뿐이냐, 인마.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라면 내가 이해를 한다. 저 하늘에 날아가는 새가 통통허니, 허벌나게 맛이 있겄구나, 저 새를 잡아다가 털을 뽑아서 꾸워먹으면 얼마나 꼬수까."

아이들이 웃었다. 선생님은 웃지 않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짐승 함부로 먹는 아이들을 색출해내기 시작했다.

“개구리 꾸어묵는 놈 손들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개구리 꾸어먹는 놈을 본 놈은 손들어.” 조재선이가 손을 들었다.

“누가 꾸어먹었느냐?”

“이오복입니다.”

“이오복 일어나.”

“선생님, 조재선이는 비암 꾸어먹었는디요.”

우리가 ‘꾸어’먹고 싶어 하고, 또 먹었던 게 어찌 새니, 개구리니, 뱀뿐이었겠는가. 머스매들은 수렵족이요, 가시내들은 채취족, 이름하여 수렵채취로 어린 목숨들을 연명하고 있었던 것을. (p.95)

선생님은 아무리 미물이라도 함부로 해치면 안 된다는 교육적인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그 때 개구리 잡아먹고 뱀 잡아먹고, 나는 새 보고 잡아먹고 싶어 했던 아이들은 마음이 사나웠던 게 아니라, 배가 ‘사납게’ 고팠던 것이라고 작가는 전한다. 가슴 한편이 찡해 오는 대목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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