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된 산악인 아내들 감동사연
`자유로운 영혼`된 산악인 아내들 감동사연
  • 북데일리
  • 승인 2005.09.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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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에 육신을 묻고 `자유로운 영혼`이 된 산사나이들의 미망인이 쓴 `사부곡(思夫曲)`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출간된 책 `엄홍길의 약속,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심산 지음. 이레)에 실린 고 박무택 대장과 고 백준호 부대장의 부인이 쓴 편지에는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이생에서 다하지 못한 사랑이 구구절절이 묻어난다.

<고 박무택 대장의 아내가 쓴 편지>

찬민 아빠!

당신이 떠난 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나버렸습니다. 문기둥에 그려놓은 찬민이 키 높이가 한 뼘이 커지도록 당신은 오시질 않는군요. 그곳에서 지켜보고 계시겠죠.

우리 민이가 얼마나 씩씩하고 의젓하게 자라고 있는지. 처음엔 당신이 언제 오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묻고 묻고 하더니 이제는 그 마음에도 아빠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나 봅니다. 당신이 떠나던 날 아빠 가지 말라고 그렇게 울던 찬민이가 이제는 제 눈물 닦아주고 위로해주는 든든한 아들이 됐답니다.

이곳엔 벌써 봄이 오려 합니다. 당신과 한 번도 같이 해보지 못한 그 봄이 또 오고 있습니다. 이맘때만 되면 짐을 꾸려 떠나던 당신 모습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제가 그렇게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던 당신이 미울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같이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왜 혼자 가버렸냐고 원망도 해봅니다. 당신의 그늘이 그렇게 크고 넓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찬민이랑 살아갈 날들이 두렵고 겁이 납니다. 보고 싶은 사람, 불러보고 싶은 이름, 이제는 가슴속에 묻어야 되는 당신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하나 이젠 잊은 척 살아가겠습니다. 찬민 아빠! 잘 가세요. 그곳에서 우리 민이 꼭 지켜봐주세요. 작별 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낸 당신께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하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라고….

<고 백준호 부대장의 아내가 쓴 편지>

산이 아빠

잘 지내고 있죠? 무심한 사람… 그렇게 좋아하던 산이 수야 두고 갔는데 한 번도 꿈에 안 오고 당신 별명대로 정말 미련곰탱이 맞네요…. 당신 거기 누워 있는 그때부터 더워도 덥다고 추워도 춥다고 말하기가 참 미안했어요.

갑자기 아빠 보고 싶다고 울어대는 수야를 볼 때, 아침에 자고 일어난 수야가 아빠가 내 마음속에 없는 것 같다고 풀죽은 목소리로 말할 때, 아빠가 없어서 우리 가족은 행복할 수 없다고 심각하게 말하면서 눈물 글썽이는 수야를 볼 때, 애들 학교 행사란에 당신 자리 비워두어야 할 때, 왜 우리 애들이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나… 당신 원망 참 많이도 했어요.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참 편하게 말하더라고요. 당신 거기 누워 있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부럽다고까지 말하던데 그건 참 이기적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아 있는 가족들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하는 말이에요. 그 흰 산에 당신이 꽁꽁 얼어서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사지가 뒤틀리고 피가 마르는 걸 그들은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육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지만 불쑥불쑥 커서 에베레스트에 아빠 찾으러 갈 거라고 애들이 말할 때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는지 그들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 그렇게 되고 서점에 책 사러 갔는데 우리 산이가 망설임 없이 고른 책이 《에베레스트 등정하기》였어요. 아빠 찾으러 가겠다고… 당신 꼭 닮은 당신 아들 맞죠? (중략)

우리 산이랑 수야 항상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면 그걸로 됐어요. 일이 잘 안 되고 속상할 때면 당신 원망도 하겠지만…. 그 정도는 들어줘야 되지 않아요 당신? 이제 우리 가족 걱정하지 말고 당신 그곳에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편하게 지내요.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요.

우리가 부르면 언제든지 돌아봐줄 수 있는 곳에 있어요…. 그리고 우리 산이 수야 항상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해줘요.

산이 수야 엄마가…

생사의 고비를 함께했던 동료들의 죽음 이후, 오로지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목적으로 77일 동안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가 해발 8750미터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는 과정을 담은 이 책은 화제를 모았던 MBC 다큐 `아! 에베레스트`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원정대를 이끈 엄홍길 대장의 심경을 생생하게 담았다.

`산에 육신을 묻은` 3명 중 백준호 부대장과 장민 대원의 시신은 찾지 못하고 박무택 대장의 시신만 발견했지만, 원정대는 산사나이들의 진정한 우정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책은 앞서 소개된 미망인들의 애끊는 사부곡을 비롯 엄홍길 대장을 죽을 고비에서 구해낸 고 박무택의 영혼, 시신 수습 후 고인들을 영원히 떠나보내며 마지막으로 남기는 대원들의 가슴시린 사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북데일리 노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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