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휘파람` 소리도 듣는 백수이야기
`바퀴벌레 휘파람` 소리도 듣는 백수이야기
  • 북데일리
  • 승인 2005.09.1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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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이은의 창작집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2005. 현대문학).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소설은 사회에서 밀려난 채 자살을 꿈꾸며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이름은 이태백.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름이 말해주는대로 그는 실업자다. 사무실과 주택가에 광고 전단지를 뿌리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햇볕만 쬐면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심할 경우 호흡곤란까지 유발할 수 있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애완동물로 `마다가스카르 휘파람`이라는 이름의 바퀴벌레를 기르고 있고 죽으면 태국 방콕의 한 공립병원으로 이들을 데려가서 합동장례식을 치뤄줄 생각이다.

어느 날 그에게 한국자살예방센터의 직원 김도명이 나타난다. 그녀는 이태백이란 남자의 신상을 미리 파악하고 그의 자살을 막기 위해 집을 방문한다.

김도명의 눈에 비친 이태백은 어두컴컴한 집에서 바퀴벌레와 살고 있는 엽기적인 인물이다. 희귀병때문에 생쌀과 야채로 끼니를 대신하며 거리낌없이 바퀴벌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궤변을 늘어놓는다.

"바퀴벌레는 값이 싸고 슬리퍼를 물어가지 않고 산책시킬 필요가 없어서 좋다, 바퀴는 노란색을 식별하지 못한다, 오이는 싫어하지만 사과는 잘 먹는다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섬의 사람들은 바퀴벌레가 내는 소리를 휘파람같다고 느낀다"

남자의 자살을 막기 위해 나타난 여자는 자살방지캠페인 팸플릿과 자신이 멤버로 속해 있는 자살클럽 `비상구`의 팸플릿을 건네준다. 그리고 이태백에게 자살 클럽에 초대하겠다며 파티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한다.

파티에서 열릴 게임에서 남자가 이길 경우 83가지의 자살 방법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을 남긴 채 여자는 사라진다. 남자는 비상구의 약도가 가느다란 핏줄같다고 느끼면서 여자의 초청과 자신의 자살방법에 대해 진지한 고민에 빠진다.

김이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도태되어가는 약자들이 대부분이다.

신체 장애자, 자살을 꿈꾸는 실업자, 자신을 버린 남자를 한없이 기다리는 여자, 배꼽부터 시작해 몸 전체가 소멸되는 여자 등 육체와 정신이 결핍으로 가득 찬 이들이다. 데뷔작 `일리자로프의 가위`가 그랬고 이번 창작집에 실린 `쥬라기 나이트`와 `진미식당 블루스`도 예외는 아니다.

작가 김이은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입장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 건데, 요즘같은 세상에 모든 것이 정상인 사람은 버티기도 힘들고 오히려 그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문학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교수)는 서평을 통해 "소설을 읽다보면 주인공 남자와 바퀴벌레를 동일선상에 놓으려는 작가의 집요한 의지를 엿볼 수 있으며, 바퀴벌레의 생리를 통해 남자의 소외적 양상을 실체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머리 속에서 남자의 몸은 자꾸만 구석을 향해 벌레처럼 작아져 갔다"나 "남자는 바퀴벌레에게나 자신에게나 모두 빛이 죽음이라는 건 엄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와 같은 부분이 해당된다.

또 남자가 여자에게 죽어가는 바퀴벌레를 보면서 "바퀴벌레는 뇌가 두개라 한 번 죽고 난 뒤 다시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저렇게 다른 바퀴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먹이와 공간이 부족하니까 어항 속을 한 번씩 정리해줘야 하거든요" 라며 무미건조하게 내뱉는 부분도 그렇다.

작가는 남자의 입을 통해 바퀴벌레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게 만듦으로써 혐오적 분위기까지 더한다. 바퀴벌레를 씹으면 새우맛이 난다라든가 손전등에 노란색 셀로판 테이프를 붙여 바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장면, 바퀴벌레 한 마리를 집어내 머리를 떼어낸 뒤 다른 바퀴들의 밥이 되게 하는 부분은 독자의 상상력까지 꼬물거리게 만든다.

평론가들은 기존 소설의 경우 작중 말미로 치달을수록 작가가 작품 속 인물과 타협하거나 동조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인데 그에 반해 김이은의 작품은 지극히 냉정하다고 평가한다.

`마다가스카르~`의 경우 남자의 자살을 막으려고 찾아온 여자가 오히려 그의 자살을 부추긴다. 남자에게 삶과 죽음의 카드를 동시에 내놓지만 궁극적으로 여자는 그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는 다른 작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이은은 "삶 자체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소설 속에서 부질없는 해답을 주지 않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방민호 교수는 "우승열패적인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에 작가는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이들의 삶을 보다 냉정하게 객관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이은 작가는 나머지 단편을 끝내고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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