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좋겠다. 천국에 가서" 감동 암투병기
"아빠는 좋겠다. 천국에 가서" 감동 암투병기
  • 북데일리
  • 승인 2005.09.13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생 죽음을 연구했다는 심리학자 엘리자벳 퀴블러 로스는 사람이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되면 5단계의 심리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부인-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거치면서 당사자와 가족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 다양한 생각과 반응을 보이게 된다.

지금 숨쉬고 있기에 행복했던 어느 암환자의 투병 에세이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2005 이너북)의 저자 이이즈마 나츠키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타협과 우울, 수용에 해당되는 심리 상태를 편안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프로 윈드서퍼로 세계 대회에서 이미 화려한 전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 괌에서 스포츠 센터를 운영하면서 잡지에 기고도 하는 등 다방면에서 자질을 뽐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간암 판정을 받고 두 번의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2004년 5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하와이로 이주해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 싶다"면서 인터넷에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이즈마는 밥 한 숟갈, 물 한 모금 마시는 것 조차 살얼음판을 걷듯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상황에서도 마치 가벼운 두통을 앓는 것처럼 부담없이 써내려가고 있다.

간암 환자가 겪어야 하는 각종 증상과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이 마치 남의 일인냥 담담하게 관조하는 자세로 그려지고 있다.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는 그가 앞서 발표했던 자전적 소설 `천국에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면`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천국에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면`에는 병원 환자들을 대신해 가족이나 연인에게 편지를 대필해 주는 편지 가게 `헤븐`(Heaven)이 등장한다. 젊은 시절 의료 사고를 겪고 그 후유증으로 수술실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 정신과 의사가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주된 업무는 편지 대필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말기 암 환자들의 심리 상태를 연구하는 일이다. 가게를 찾는 이들은 죽음을 앞두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괴로워하다 마지막 순간에 편지를 통해 그간의 인생을 참회하고 스스로 진실해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의 종착역에 다다른 그들의 소망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또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존재로 기억되는 것이었다.

`천국에서...``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삶에 대한 갈구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면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는 지극히 직접적이다. 바로 자신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글은 `나는 말기 암 환자`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이이즈마는 의사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은 뒤 병원을 떠나 여섯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이주한다. 가족이 대이동하면서 몸소 느꼈던 행복감을 놓치고 싶지 않은 냥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적고 있다.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나오는 병원 밥에 지겨워하면서, 평소 먹고 싶어했던 마른 빵 한 조각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진수 성찬 가득한 화려한 집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예전에는 죽음을 앞두고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삶은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내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억지로 자신의 마음 속에 뭔가를 강요하거나 주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바꼈다.

그는 암과 싸우기 시작하면서 이런 다짐을 했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 그러나 아침이 오지 않은 날은 없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인생은 반드시 호전될 것이다." (본문 중)

무심코 손톱으로 팔을 긁었더니 부스러기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피가 났다. 의사는 신체 내부에서 해결되어야 할 현상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해서 일어나는 거라며 주의를 줬다. 이처럼 사소한 행위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또한 뼈져리게 느꼈다.

링거병과 하얀 시트, 소독약 냄새로 가득한 병원보다 가족과 함께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음이 새털보다 가벼웠다. 마치 당장이라도 훌훌 털고 일어날 것만 같았다. 글의 마지막은 아내가 마무리했다.

남편이 천국행 티켓을 끊고 가버린 뒤 막내 아이가 아빠없는 텅 빈 방을 보며 말했다.

"아빠는 좋겠다. 천국으로 가서..." (본문 중)

2005년 2월 28일, 이이즈마 나츠키는 38년의 삶을 마무리했다.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