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시첩 끝나지 않은 친일의 역사-문인편
피디시첩 끝나지 않은 친일의 역사-문인편
  • 북데일리
  • 승인 2005.09.13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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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이 나라를 가렸네, 똥인지 오줌인지 구분 못하기 때문이지” (親日蔽國家 大小便不分)

친일논쟁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다산 선생께서 살아계셨다면 지으셨을 싯구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사건과 문학으로 꾸미는 ‘피디시첩(詩帖)’ 시작하겠습니다.

피디: 김기자, 최근 발표한 친일명단이 3,090명에 이른다죠. 상징적인 숫자인 듯 한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겁니까.

기자: 네, 그렇습니다. 삼공구공, 즉 일제시대에 친일을 했던 30대부터 90대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피디: 아,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군요. 그나저나 이번 명단에 깜작 놀랄 만한 인사들도 다수 들어있다고 하던데요.

기자: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람이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위암’ 장지연인데요. 고인은 그 일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다가, 며칠 전 서면으로 저희 취재팀에 입장을 전달해 왔습니다.

피디: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네, ‘시일야방뇨대변’이란 제목으로 비교적 짧은 글을 보내왔는데요, 간단히 말해서 ‘그 쩍에는 모다들 똥싸고 오줌 안 싼 놈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피디: 친일도 친일이지만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그분의 글을 공부하지 않은 국민이 없는데요, 시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기자: 그래서 제가 직접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시민1: 대학입시 때 딱 한 문제 틀려서 서울대를 못 갔는디, 그 문제가 바로 장지연의 호를 묻는 문제였어. 당연히 나는 장씨니까 장암으로 했어. 알고보니 위암이드만. 속 쓰리드만 잉.

피디: ㅎㅎ 재밌는 분이시군요. 이밖에도 많은 친일인사들을 만나 봤다지요.

기자: 네, 만나기는 했지만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화면을 보시면서 친일문인들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김동환: 안녕하세요. 파인입니다. 좋다는 의미죠. 이번에 본정통에 주점 하나 차렸거든요. ‘동경의 밤’요. 많이 찾아주세요. 인생 뭐 있어요, 그냥 즐기다 국경도 넘고 그러는 거죠 뭐. 알고보면 같은 맥락이고 이유다. 긴장 풀고 한잔 쭉 들이키자구요.

김동인: 와따시와 곤토후미히토. 다들 잘 계시죠. 제 이름을 딴 문학상 아직도 잘 되고 있죠. 제 ‘감자’를 먹고 자란 후배 문인들이 자랑스러워지네요. 이 자리를 빌어 동인문학상 후원해주고 있는 신문사에도 감사드려요. 감자나라~ 사요나라~

노천명: 안녕하세요. 저에요 꽃사슴. 제 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가 가뜩이나 나약한 조선청년들의 입영기피를 방지하는데 널리 애송되었으면 해요. 요즘 애들, 너무 나약해, 앙. 그리고 고백할 게 있는데, 저 모가지 길지 않거든요.

채만식: 저 만식이요.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디, 각설허고 저번에 군산시에서 내 문학관 지었다는디, 그럼 검증된 거 아닌가. ‘레디 메이드 인생’ 뭐 ‘탁류’ 속 망둥이처럼 아무 미끼나 물면서 사는 거여. 안 긍가 기자양반. 와서 회 한사라 하드라고, 좌우지간 스키다시 하나는 확실헝게 이 쪽이.

피디: 다들 할 말이 많군요. 이 분들 외에도 친일인사가 적지 않을 텐데, 김기자! 이번 친일명단 발표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시죠.

기자: 네, 친일명단 발표는 광복60주년을 맞이해서 얼룩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청산이 아니라 오히려 온존된 일제의 잔재는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민족의 정기를 좀 먹었고, 민족의 가치관을 학살하였다. 이 흙탕물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민족의 자주는 공염불이요, 따라서 민족의 통일도 백일몽”이라며 평생을 친일문제에 매달려온 임종국 선생의 말의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피디: 김기자, 수고했습니다. 애국지사를 죽이는데 써달라고 중기관총을 일제에 헌납하고도 오히려 ‘처음 듣는 얘기’라며 발뺌하는 어느 신문사의 모습에 아직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상처들이 남아있는 듯 합니다.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 2부에서는 백두대간을 오르면서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찾는 어느 시인의 얘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시청해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피디시첩 ‘끝나지 않은 친일의 역사’ 1부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노천명과 채만식)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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