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장애물을 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장애물을 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8.05 2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귀은의 『그녀의 시간』

 한귀은의 『그녀의 시간』(예담. 2015)은 그림과 함께 여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 7명의 여자를 통해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살아가는 시간, 그리고 마주하게 될 시간을 말한다.

 ‘사람은 매 순간 성장한다. 성장한다는 것은 더 지혜로워지고 더 인내심이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혼돈을 수용하는 능력이 더 생긴다는 거고, 불안 속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프롤로그, 7쪽)

 기간제 교사로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헌팅」에선 스물여섯의 시간을 보여준다. 늪처럼 느껴져 빨리 통과해 다른 땅을 딛고 싶은 욕망을 통해 20대의 시간. 결혼만 하면 안정된 삶이 될 것 같은 시기다.

 30대의 시간이라 할 수 있는「동희 언니」는 결혼 후 친정으로 돌아온 여자의 이야기다. 엄마와 딸의 시간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이런 그림만으로 충분하다.

월터 랭글리, <슬픔은 끝이 없고>, 1894

 ‘동희 언니는 고모가 없었으면 못 살았을 것이고 고모도 동희 언니가 없었으면 지금처럼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모녀가 슬픔을 함께한다는 것은 각자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삶을 같이 산다는 의미다. 고모는 동희 언니의 삶을 살고 있었다.’ (67쪽)

 한귀은은 다양한 세대의 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그려냈다. 쉰이라는 시간을 그린「미자의 레스토랑」속 미자는 변화를 원했다. 남편이 죽고 10년이 지난 그녀에게 돈이 아닌 삶의 목표가 있어야 했다.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시간인 것이다.

안나 앙커, <부엌에 있는 소녀> 1883~1886

 ‘미자는 사는 게 참 장애물 경기 같다고 생각했다. 재복은 한 장애물을 넘었는데 다음 장애물을 만났다. 그리고 그 장애물을 넘지 않고 옆으로 돌아갔다. 살다 보면 장애물을 넘지 않아야 되는 때가 있다. 그게 반칙이고, 그렇게 해서 실격을 당하더라도, 오히려 실격을 당하기 위해 그래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169~170쪽)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장애물을 넘었어도 절대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있다. 어떤 나이를 산다는 건 그 시간을 만지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싱글 예순셋 교수의 시간을 들려주는「두 여교수」는 늙음을 말한다.

 한귀은은 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정은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글로 허락한 이들의 진심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어느 시간을 살든지 여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책이다. 가만히 그림만 봐도 같은 시간을 산다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