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일러스트 쉽지만 않아요"
"책속의 일러스트 쉽지만 않아요"
  • 북데일리
  • 승인 2007.04.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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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고 싶은 일은 천만 개, 열정은 억만 개> 일러스트레이터 박민선

[북데일리]발그레한 볼, 동그란 코, 흩날리는 머리카락, 통통한 입술... 책 속의 아이들이지만 실제처럼 느껴진다. 줄넘기를 하는 아이에게는 숨소리가 들리고, 축구 하는 아이에게는 땀 냄새가 난다.

<하고 싶은 일은 천만 개, 열정은 억만 개>(올리브M&B. 2007)의 그림은 이렇듯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모두 일러스트레이터 박민선(34)씨의 작품이다.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쉘 위 퓨전> <코파닉스> <선생님도 모르는 과학질문 100가지> <나의 비밀 친구> 등의 그림 작업을 진행해 온 박 씨는 이번 작품을 하며 처음으로 ‘펜 마우스’를 사용했다. 그간은 주로 수채화작업을 사용해왔다.

<하고 싶은 일은 천만 개, 열정은 억만 개>(올리브M&B. 2007)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동화로 재구성한 책. KBS-TV 성장다큐 ‘꿈’을 토대로 했다.

최근 자신의 작업실에서 만난 박 씨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아이들의 꿈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사실성과 동화적인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고민했다”며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해 재미와 차별성을 주었다”고 말했다.

박씨에게 이번 일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라 실제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 아이들이 처한 현실과 동화적인 요소를 어울려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박 씨는 “사실 적인 그림에 오브제 사용은 잘못하면 겉도는 느낌이 날 수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박씨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수채화적 느낌과 서정성. 풍부한 색감과 역동적 스케치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번 작품 역시 수작업을 연상케 하는 서정적 스케치가 돋보인다. 모두 포토샵과 페인터프로그램이 조합된 작업물이다. 그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1.출판사에서 원고가 오면 여러 번 읽으며 그림이 들어갈 장면을 정한다.

2.커다란 레이아웃을 잡고 러프스케치를 한다.

3.장면마다 필요한 자료 및 재료를 선정, 여러 방향으로 배치하고 스케치수정을 한다.

4.스케치가 끝나면 출판사와의 미팅을 통해 보완 및 수정작업을 거친다.

5.최종 스케치가 끝나면 포토샵, 페인터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채색과 오브제작업을 통해 완성 컷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 꼬박 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생생한 이미지들이 완성됐다.

▲<하고 싶은 일은 천만 개, 열정은 억만 개> 이미지 컷

박씨는 “원고의 성향, 독자층, 기획의도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그림 작가의 성향을 충분히 검토하고 출판사에서 의뢰하기 때문에 스타일에 있어 큰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일러스트레이션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는 동화책과 학습지. 최근에는 수준 높은 소비층을 바탕으로 소설, 시집, 잡지, 광고 등을 통해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이 등장하고 있다. 이에 박씨는 “다양한 쓰임새에 비해 출판계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의 영향력은 미비한 상황이라 저작권 보호에 불리한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책 한권을 끝내고 나면 말 못할 허탈감에 빠지기도 한다는 박씨.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보거나 전시회에 가게 될 경우 상황은 반전된다. ‘뭉글뭉글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에 시달려 다시 스케치에 몰두하곤 한다.

따뜻한 그림의 노먼 락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레인 스미스, 설명이 필요 없는 베아트릭스 포터, 섬세하고 철학적인 로베르토 이노첸티 등이 박씨를 자극하는 경쟁상대다. 관심 있는 분야는 그림만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로알드 달, 조병준, 법정, 박완서의 책은 밤새워 읽을 정도로 좋아한다. 좋아하는 작품을 읽을 때면 상상력이 발휘되곤 한다고. ‘물먹은 듯한 촉촉함’이 느껴지는 박씨의 그림은 이처럼 치열하게 보고, 읽고, 상상한 노력의 산물이다.

박씨는 현재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을 통해 오히려 배운다”며 “순수한 동심만큼 나를 자극 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 <하고 싶은 일은 천만 개, 열정은 억만 개>를 즐길 수 있었던 것 역시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

그는 “수채화작업과 컴퓨터작업을 병행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야기의 첫줄은 내가 쓰지만, 어떤 얘기가 될지 그 누가 알랴”

얼마 전 본 영화 ‘미스포터’의 대사를 잊지 못한다는 박씨. 주인공 베아트릭스 포터처럼 그 역시, 끝을 알 수 없는 결말을 향해 즐거운 항해를 계속 하고 있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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