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대체로 산문집이 그러하다. 하나의 주제나 주장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스며드는 글 말이다. 하루키의 글이 지닌 장점이다. 1979년부터 2010년까지 써온 글 가운데 직접 선택한 69편을 엮은 책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비채. 2011)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하나를 소개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일을 인생의 질과 연결시키는 내용이다.
‘나이를 먹어서 좋을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입니다. 한 걸음 뒤에로 물러서면서 전보다 전체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에 불현듯 눈뜨게 됩니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서 하나를 얻은 것 같은 흐뭇함에 젖어들게 합니다. 물론 반대로 젊은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나 문학에도 있지만요.
나에게 음악이 가진 최대의 훌륭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차이도 알고 중간 정도 차이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미묘한 작은 차이도 식별할 수 있죠. 물론 그것은 나한테 좋은 것, 나한테 나쁜 것이라는 뜻이니 그저 개인적인 기준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 차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인생의 질이라고 할 만한 것까지 크게 달라지게 만드니까요.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그런 만큼 정말로 좋은 음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114~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