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장] 시간은 혈관 속 피처럼 끊임없이
[명문장] 시간은 혈관 속 피처럼 끊임없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6.06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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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의 <다정한 편견> 중에서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다정한 편견>(고유서가. 2015)는 2008년 1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한 <손홍규의 로그인>이라는 칼럼을 묶은 책이다. 꼭지마다 원고지 4.5매 내외의 분량이다. 짧은 글 안에 담긴 단단한 의지가 엿보인다. 좋은 문장은 생각을 선물한다. 그냥 읽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문장을 우리 삶에 대입한다. 이런 글이 그러하다. 말과 글에 대한 소중함을 삶으로 연장시킨다.

 ‘우리의 혀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자주 우리의 진심을 왜곡한다. 말로 표현된 것들이 그 말을 내뱉은 사람의 뜻을 고스란히 담는다고 믿을 수는 없다. 말을 늘 침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말하는 도중에 우리는 무형의 구두점을 사용한다. 쉼표와 느낌표와 물음표 그리고 말줄임표까지 우리의 말과 함께 움직인다.

 잠시 숨을 고를 때이거나 억양이 달라졌을 때이거나 그런 순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두점을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짧은 침묵의 순간 역시 하나의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해석할 때는 이 침묵을 고려해야 한다. 삶도 그와 닮은꼴이다.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살지 않는다. 시간은 마치 우리의 심장처럼 멈추지 않으며 우리의 혈관 속 피처럼 끊임없이 흐른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줍기 위해 무릎을 굽히기도 한다. 삶은 이 멈춤과 침묵 없이 해설될 수 없다. 멈추고도 멈추지 않는 것 흐르고도 흐르지 않는 것.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그 무엇이다.’ (186~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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