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책? 무게 때문에 방바닥 꺼져
몹쓸 책? 무게 때문에 방바닥 꺼져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05.28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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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책 3만 권. 언뜻 분량을 가늠하기 어렵다. 1년에 1천 권을 펼쳐 일부를 발췌해 읽는다는 기준을 둔다면 30년 동안 읽을 수 있는 양이다. 일반적인 가정집에 이 책들을 보관한다면 어떤 상태일까. 아마도 이럴 것이다.

‘책장에 꽂아둔 책과 거의 같은 양의 책이 계단에서 복도, 책장 앞, 책상 주변까지 쏟아져 쌓일 대로 쌓였다. 덕분에 몸을 슬쩍 움직이는 일조차 여간 고역이 아니다. 바닥에 흐트러진 책과 책 사이 좁다란 공간에 한쪽 발을 비집고 들어서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겨우 앞으로 나간다 해도 쌓아 올린 책의 탑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장서의 괴로움>(2014. 정은문고)의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의 고백이다. 발 디딜 공간을 찾을 수 없어 밟고 넘어서고, 심지어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없어 집에 있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는 일까지. 점점 책이 집을 파괴하는 실정이다. 장서가라면 충분히 공감 백배일 터. 또한, 책에 여러 장서가의 사정도 실었는데 실로 살풍경하다.

한 시인이자 편집자인 남자는 어느 날 집주인이 불러 밖으로 나간다. 그가 세든 2층 자취방에 책을 너무 많이 쌓아 둔 탓에 2층 목조건물 전체가 확연히 기울어진 것이다. 또 어떤 장서가는 2층 방에 천장까지 책을 쌓아올려 집 전체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삐걱삐걱 음산한 소리를 냈다. 한 철학자이자 수필가의 서재는 심지어 책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방바닥이 꺼져버리기도 한다.

그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책을 헌책방 주인이게 팔기도 하고, 책을 위한 집을 다시 짓기도 한다. 책을 위한 집이라니. 진정 주객전도다. 저자는 그칠 줄 모르는 책 욕심을 부리며 책을 쌓아 두는 행위를 비틀어진 욕망이라 단정한다. 특히 읽지 않는 책들을 배출해 책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대목은 기억해두자. 다량의 책은 결국 지적 생산의 유통을 정체시키기 때문이다. 독서가, 애서가들은 잠정적인 장서가다. 이런 맥락에서 어쩌면 이런 일이 꼭 남의 일만은 아닐 듯.

책은 장서의 괴로움으로 책 다이어트에 돌입한 장서가의 고충을 유쾌하게 풀어낸 책이다. 때론 책 때문에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지만 그래서 더 익살스럽고 재미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종이책을 고수하는 이들에게 추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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