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장] 백합 구근을 벗겨낸 듯 새하얀 피부
[명문장] 백합 구근을 벗겨낸 듯 새하얀 피부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5.25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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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중에서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1968년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설국>(민음사. 2002)의 첫 문장이다. 설국은 독자뿐 아니라 소설가에게도 문학에 대한 첫 관문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김연수는 너무 좋은 문장이라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까지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많은 이가 소설의 첫 문장과 눈에 대한 묘사를 꼽는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게이샤 고마코를 묘사한 부분도 압권이다. 누가 이런 문장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늘고 높은 코는 다소 쓸쓸하게 마련인데 뺨이 활기 있게 발그레한 덕분에, 나 여기 있어요, 하는 속삭임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윤기 도는 입술은 작게 오므렸을 때조차 거기에 비치는 햇살을 매끄럽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더욱이 노래를 따라 크게 열렸다가도 다시 안타깝게 바로 맞물리는 모양은 그녀의 몸이 지닌 매력 그대로였다.

 약간 처진 눈썹 밑의, 눈꼬리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일부러 곧게 그린 듯한 눈이 지금은 촉촉이 빛나 앳돼 보였다. 화장기 없고, 도시에서의 물장사로 말쑥해진 얼굴에 산 빛깔이 물들었다고 할 만치 백합이나 양파 구근을 벗겨낸 듯한 새하얀 피부는 목덜미까지 은근히 홍조를 띠고 있어 무엇보다 청결했다.’ (65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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